문학/현대문학

이육사 '청포도' 해석/해설

솜비 2022. 11. 3. 22:03

내 고장 칠월은 (내 고장 : 풍요로운 삶과 인간의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땅)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칠월 : 생물의 성장이 가장 왕성한 것으로 생각하는 시간)

(청포도 : 청색은 청신하고 풍요로움을 표상하고 희망적 이미지가 강함)

1연 : 한여름 무더위 속에 탐스럽게 영그는 청포도에 초점을 맞추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청각의 시각화 - 공감각적 표현, 풍요롭게 많이 매달린 모양, 음악적 효과)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밝은 미래를 기다리는 희망감이 청포도의 싱싱함과 어울려 떠오른다는 뜻의 감각적 표현. '하늘'은 청포도의 깨끗한 색깔이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는 의인법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억눌린 소망이 밝은 빛 아래 펼쳐지는 때가 오면. 푸른 색과 흰 색의 색채 대비가 돋보이는 감각적 표현으로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는 의인법에 해당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손님 : 시적 화자의 꿈과 소망을 성취시켜 줄 대상, 광복을 의미)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청포 : 빛깔이 푸른 도포. '도포'란 통상 예복으로 입던 겉옷)

('고달픈 몸'은 어두운 역사 가운데 괴로운 삶을 살고 있는 민족(民族) 또는 독립 투사(鬪士) 혹은 지사(志士)의 시련을 암시하고, '광야'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과 유사한 상징적 의미)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그 = 손님)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함빡'의 사투리. 모자람이 없이. 아주 흡족하게. 왕성한 식욕과 건강을 암시하면서 넉넉하고 평화로운 삶의 모습)

('그'는 내가 애타게 기다리는 인물 또는 조국 광복, 이상 실현. 그는 세파(世波)에 모질게 시달렸으나 여전히 고고한 정신을 유지고 있다. 이런 인물(세계)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면 내 고향은 다시 회복되는 것이므로 나 역시 은쟁반, 모시 수건과 같은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그를 기다린다.)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아이야 : 가상적 시적 청자) (은쟁반 : 백색 이미지로 순결함을 표현)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하이얀 : '하얀'의 색채 감각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맞춤법에서 벗어난 표현. 시적 허용)

(모시 : ‘하이얀’과 더불어 고향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의 백색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있음)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 : 미래의 화해로운 삶을 향한 순결한 소망을 구체화. 흰 빛깔은 티 없이 깨끗한 기다림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

마지막연 : '손님'이 올 것을 확신하고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순결하고 정성스러운 준비를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어둠과 억압적인 일제 치하에서 일제에 대한 투쟁 의지가 내면화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시를 통해 자기가 꿈꾸며 바라는 세계에 대한 준비와 기다림, 평화로운 삶에 대한 소망을 그리고 있다. 시적 자아는 현재 어두운 역사 속에 시련과 방랑의 길에 놓여 있다. 그러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자기가 바라는 그 날이 도래할 것을 기다리고 있다. 막연히 기대하고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을 실현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육사(李陸史)의 시는 항상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다. 그는 올바른 역사의 귀결점이 무엇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는 미래 지향의 역사 의식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꿈에서라도 그리워하는 평화로운 삶의 세계를 성취하겠다는 의지를 이 시를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독자 편에서 보자면 상상력을 통해 정서를 인식하고, 현실과 대응시켜 보고, 삶의 비전을 형성하는 전 과정을 통틀어 문학적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적 체험은 작가의 체험이나 깨달음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단순한 반응을 넘어선다. 독자는 작가가 창조한 작품에 다시 자신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재구성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작가의 생각을 비판하기도 하고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체험을 다른 방향으로 정리해 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작가와 독자는 각기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창작하고 감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작품에 담고자 한 의미와 독자가 읽어 내는 의미가 똑같지 않다.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은 서로 주관적인 속성을 띠며 교섭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육사의 '청포도'를 예로 들어 보자.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의 '청포도'>

이 시를 읽고 정서를 체험하고 내면화하기 위해 '내 고장'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이 시의 서정적 화자를 독자 자신으로 바꾸어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 청포도라는 대상도 이 시의 맥락 속에서 관조해 보면 된다. '칠월'의 음상과 청포도가 잘 어울리고, 그것은 다시 '푸른 바다'나 손님이 입고 오는 '청포(靑袍)' 등과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연결된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으로 족하다. 또한 청포도는 아름다운 전설이 아기자기하게 이야기되는 모양이라든지 하늘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모양을 이끌어 내는 데에 적절하다는 것을 알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 시를 읽는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한 여성으로 자리를 바꿀 수 있게 된다. 아름다운 계절에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으로 자리를 바꾼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한 상황을 구체화해 주는 것이 마지막 연의 '아이야'하고 넌지시 부르는 여유 있는 태도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손님'을 독립을 위해 분투하는 지사(志士)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정하는 것은 오히려 시의 의미를 정서 차원에서 제한하는 것이 된다. 읽는 사람 각자의 처지에 따라 '손님'은 여러 모양으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상력은 작품을 다양한 층위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개인의 문학적 체험과 삶의 체험이 확대될수록 작품 이해에 작용하는 상상력의 폭과 깊이도 증대한다. 똑같은 작품이라도 어린 시절에 읽은 경험과 나이가 들었을 때 읽는 경우 그 감동이 달라지는데, 이는 상상력의 깊이와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는 경험의 축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여기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을 확충함으로써 보다 폭넓고 깊은 감상을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일이다. (출처 : 우한용, 박인기, 정병헌, 최병우, 이대욱, 경종록 공저 두산 문학 교과서)




집필 의도 및 감상


이 시는 어둠과 억압적인 일제 치하에서 일제에 대한 투쟁 의지가 내면화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시를 통해 자기가 꿈꾸며 바라는 세계에 대한 준비와 기다림, 평화로운 삶에 대한 소망을 그리고 있다. 시적 자아는 현재 어두운 역사 속에 시련과 방랑의 길에 놓여 있다. 그러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자기가 바라는 그 날이 도래할 것을 기다리고 있다. 막연히 기대하고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을 실현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육사(李陸史)의 시는 항상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다. 그는 올바른 역사의 귀결점이 무엇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는 미래 지향의 역사 의식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꿈에서라도 그리워하는 평화로운 삶의 세계를 성취하겠다는 의지를 이 시를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내용 해설

내 고장(풍요로운 삶과 인간의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땅) 칠월(생물의 성장이 가장 왕성한 것으로 생각하는 시간)은
청포도(청색은 청신하고 풍요로움을 표상하고 희망적 이미지가 강함)가 익어 가는 시절. [내고장 칠월은 - 익어 가는 시절 : 한여름 무더위 속에 탐스럽게 영그는 청포도에 초점을 맞추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吐露)하고 있다]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너저분한 물건이 어지럽게 많이 매달린 모양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풍요롭게 많이 매달린 모양의 뜻이 강하고, 음악적 리듬 효과가 있음 ) 열리고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탐스럽게 열린 청포도의 모습을 '이 마을 전설'이 그처럼 탐스럽게 열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전부터 이 마을에서 가꾸어져 왔으며, 이어져 온 평화로운 삶이 청포도의 풍성함에 어울려 떠오른다는 뜻이다.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는 청각의 시각화인 공감각적 표현임]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한 알 한 알마다) 들어와 박혀,(밝은 미래를 기다리는 희망감이 청포도의 싱싱함과 어울려 떠오른다는 뜻의 감각적 표현. 청포도로 표상되는 고향을 청순한 하늘과 관련을 지어 시각적 심상의 효과를 더욱 높였다. '하늘'은 청포도의 깨끗한 색깔이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는 의인법이다.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억눌린 소망이 밝은 빛 아래 펼쳐지는 때가 오면. 푸른 색과 흰 색의 색채 대비가 돋보이는 감각적 표현으로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는 의인법에 해당 )

내가 바라는 손님[시적 화자의 꿈과 소망을 성취시켜 줄 대상(광복을 의미)]은 고달픈(지쳐서 느른한, 고단한) 몸으로
청포(靑袍 : 빛깔이 푸른 도포. '도포'란 통상 예복으로 입던 겉옷)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가 바라는 손님은 - 찾아온다고 했으니 : '고달픈 몸'은 어두운 역사 가운데 괴로운 삶을 살고 있는 민족(民族) 또는 독립 투사(鬪士) 혹은 지사(志士)의 시련을 암시하고, '광야'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과 유사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그'는 내가 애타게 기다리는 인물 또는 세계(조국 광복, 이상 실현)이다. 그는 세파(世波)에 모질게 시달렸으나 여전히 고고한 정신을 유지고 있다. 이런 인물(세계)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면 내 고향은 다시 회복되는 것이므로 나 역시 은쟁반, 모시 수건과 같은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그를 기다린다.]
두 손은 함뿍( '함빡'의 사투리. 모자람이 없이. 아주 흡족하게 ) 적셔도 좋으련,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 풍성한 식욕과 건강을 암시하면서 넉넉하고 평화로운 삶의 모습을 함축하고 있다. )

아이야(가상적 시적 청자 ), 우리 식탁엔 은쟁반(백색 이미지로 순결함을 표현)에
하이얀[ '하얀'의 색채 감각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맞춤법에서 벗어난 표현.(시적 허용)] 모시[모시풀의 껍질로 짠 피륙. 이 시어 앞에 놓인 ‘하이얀’과 더불어 고향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의 백색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있음 ]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 : 미래의 화해로운 삶을 향한 순결한 소망을 구체화했다. 흰 빛깔은 티 없이 깨끗한 기다림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내었다. ][아이야 - 마련해 두렴 : '손님'이 올 것을 확신하고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순결하고 정성스러운 준비를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 1

고향과 청포도를 제재로 삼고 있는데, 고향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그 고향에서 함께 지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조국을 상실한 일제 침략기에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갈망하는 민족 정서를 엮어 내고 있다. 개인의 서정이 어떻게 민족적 서정으로 바뀌는가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에는 이육사의 시가 흔히 표현하는 복잡한 갈등 의식이나 대결의 의지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제재인 청포도를 비롯한 여러 소재들에 의해 고향의 이미지를 티 없이 맑은 세계로 승화시킨 다음, 이런 공간에서 같이 지낼 님(그)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읊었다. 여기서 그리움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는 ‘그’는 인물일 수 있다. 바로 그런 인물로 대표되는 세계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언젠가는 회복되리라는 기대감을 지닌 시적 자아를 보여 주어 건강한 정서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휘 선택에 있어 이 시는 시각 심상이 주도하고 있다. ‘청포도, 하늘, 푸른 바다, 흰 돛, 청포, 모시 수건’ 등은 이런 특징을 지닌 예이다. 또 이들 시어는 고향을 청순한 이미지로 형상화하면서,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청포도’가 전통적이며 과거와 관계되는 세계를 표상한다면, ‘흰 돛’과 ‘모시 수건’으로 드러난 흰 색의 이미지는 미래와 관련을 맺도록 설정되어 있다.
이 시는 율격은 두드러진 외형률이 눈에 띄지 않으나 차분하게 그리움을 읊어 나가기 위해 4음보와 유사한 율격을 많이 구사하였고, 부분적으로 3음보격도 활용하였다.
위에서와 같은 감상은 이육사의 전기적(傳記的) 사실과 관련을 맺지 않고 대체로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육사가 지사적(志士的) 정신으로 독립을 위한 행동을 했던 사실과 관련하여, 이 시를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을 읊은 것으로 해석하는 역사주의적 관점도 있다.
시인은 고향을 떠올리는 모티프로 청포도를 사용한다. 청포도는 이 시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이 시에서 중심을 이루는 심상이기도 하다. 이 청포도는 단순한 과일의 한 종류나 풍요로운 결실만을 가리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2연에 보듯이 역사적, 사회적 운명을 같이한 공동체[마을]의 원초적 연대 의식[전설]의 결정이기도 하고, 또한 먼 하늘의 꿈꾸는 이상이 아로새겨진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의식과 염원 정도를 ‘주절이주절이’와 ‘알알이’란 두 부사로써 한껏 드러내는데, 그 갈망은 시 전편을 통해 구축돼 있는 맑고 밝으며 선명한 색채의 대조적인 제시 ‘청포도의 푸른 빛, 푸른 바다’와 ‘흰 돛 단 배, 은쟁반과 모시 수건’을 통하여 더욱 잘 부각되고 있다.
또 이 작품은 절망의 시대에 몸부림치던 이육사의 강인한 의지를 내면화하여 순수 서정으로 엮어낸 것으로, 서정적 자아는 기어이 도래하고야 말 민족의 희망찬 미래, ‘내가 바라는 손님’이 돌아올 그 날을 확신하면서 이런 아름다운 예언시(豫言詩)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해와 감상 2

이 '청포도'란 시의 배경은 경북 영일군 동해면 도구리로서, 영일만과 동해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여기에는 일본인 미쓰아가 경영하는 대규모 포도밭과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포도주 생산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육사는 1940년 여름 항일 운동과 구금 생활에 상한 고달픈 몸으로 이곳을 찾아 왔다. 이곳의 애국 청년 김영호(당시 35세. 작고), 정의호(당시 37세. 작고), 이석진(당시 40세. 작고)씨 등과 만나기 위함이었다. 장년의 육사는 우국 청년들과 함께 탐스런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린 포도 숲 속에서 어쩌면 밀담을 나누기보다는 먼저 시상에 젖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포도송이처럼 짙푸른 영일만, 졸고 있는 듯 떠가는 돛단배, 우국 청년의 가슴을 메우는 기다림, 시인의 마음에는 잔잔한 시의 물살이 살랑대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육사는 몰래 포항에 잠입해 청년들을 만난 뒤 역시 몰래 떠난 1년 뒤 삼륜 포도원과 영일만이 청포도를 탄생시켰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그 편지를 분실한 후 최근까지 까맣게 잊고 있다가 뒤늦게 알려졌다.


이해와 감상 3

이육사(李陸史)가 지은 시. 〈광야 曠野〉·〈꽃〉·〈절정 絶頂〉·〈황혼 黃昏〉 등과 함께 육사의 대표작의 하나이다. 1939년 8월호 ≪문장 文章≫지에 발표되었다가 그 뒤 ≪육사시집≫에 수록되었다. 총 6연(각 2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내용상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볼 수가 있다.
제1∼3연까지의 내용이 청포도가 익어 가는 내 고장 칠월의 자연적 배경이라면, 제4∼6연까지의 내용은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작자의 마음으로 요약된다.
나라를 잃고 먼 이역 땅에서 고국을 바라다보는 시적 자아(詩的自我)의 안타까운 마음과 향수, 그리고 암울한 민족현실을 극복하고 밝은 내일에의 기다림과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우리는 맑고 밝은 톤(音調)과 청신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청포도’·‘하늘’·‘푸른바다’·‘청포’와 같은 푸른 빛깔과 ‘흰 돛단 배’·‘은쟁반’·‘하이얀 모시수건’과 같은 흰 빛깔의 대응으로 표상되는 투명한 서정성과 간결하고 응축된 시상의 짜임새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청포도’와 ‘전설’과 ‘하늘’의 이미지를 ‘주저리 주저리’와 ‘알알이’로 연계시킨 이음새도 자연스럽거니와 이들의 결합으로 형성된 상징성은 매우 다양하다.
더구나 바람조차 의인화하여 가슴을 열게 한 표현 기법은 시적 형상화에서 고도의 경지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 곧 ‘나’와 ‘그’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제기되고 있다.
‘손님’을 육사 자신으로 보고 분열된 한 영혼의 양면성을 지적하기도 하고, ‘손님’을 그대로 객체화하여 민족적 현실의 극복을 염원하는 상징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아무튼 청포도를 먹게끔 마련된 식탁에서 정성스럽게 맞이할 손님은 청포를 입고 고달픈 몸을 이끌고 오는 귀한 존재로서 육사가 끝없이 기다리는 염원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요컨대, 이 시는 ‘청포도’라는 한 사물을 통해서 느끼는 작자의 고국으로 향하는 끝없는 향수와 기다림의 대상에 대한 염원을 주제로 하고 있다.




 심화 자료

 문학적 체험에서 상상력과 정서  

이 시를 읽고 정서를 체험하고 내면화하기 위해 '내 고장'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이 시의 서정적 화자를 독자 자신으로 바꾸어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 청포도라는 대상도 이 시의 맥락 속에서 관조해 보면 된다. '칠월'의 음상과 청포도가 잘 어울리고, 그것은 다시 '푸른 바다'나 손님이 입고 오는 '청포(靑袍)' 등과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연결된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으로 족하다. 또한 청포도는 아름다운 전설이 아기자기하게 이야기되는 모양이라든지 하늘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모양을 이끌어 내는 데에 적절하다는 것을 알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 시를 읽는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한 여성으로 자리를 바꿀 수 있게 된다. 아름다운 계절에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으로 자리를 바꾼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한 상황을 구체화해 주는 것이 마지막 연의 '아이야'하고 넌지시 부르는 여유 있는 태도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손님'을 독립을 위해 분투하는 지사(志士)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정하는 것은 오히려 시의 의미를 정서 차원에서 제한하는 것이 된다. 읽는 사람 각자의 처지에 따라 '손님'은 여러 모양으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상력은 작품을 다양한 층위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개인의 문학적 체험과 삶의 체험이 확대될수록 작품 이해에 작용하는 상상력의 폭과 깊이도 증대한다. 똑같은 작품이라도 어린 시절에 읽은 경험과 나이가 들었을 때 읽는 경우 그 감동이 달라지는데, 이는 상상력의 깊이와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는 경험의 축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여기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을 확충함으로써 보다 폭넓고 깊은 감상을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일이다.
≪참고문헌≫ 韓國現代詩論(朴斗鎭, 一潮閣, 1971), 韓國現代詩의 理解(申庚林·鄭喜成, 眞文出版社, 1981), 陸史의 詩世界(金軟東, 李陸史全集, 새문社, 198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 우한용, 박인기, 정병헌, 최병우, 이대욱, 경종록 공저 두산 문학 교과서)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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