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 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 김광균, '추일서정'
* 시어 풀이
포화 : 총포를 쏠 때 일어나는 불
도룬 시 : 폴란드의 도시 이름
* 도시의 황량한 가을 풍경 묘사를 통해 화자의 고독감을 표현한 작품.
1. 쉬운 단어를 썼으나 표현이 참신함
2. 서구 현대 문명의 분위기를 보여줌
3. 율격이 노출되지 않고 내면화되어 있다.
4. 관습적인 판단을 뒤엎는 가(假)진술로 표현한다.
5. 감정의 개입을 배제, 지성적 비판의 자세를 보인다.
6. 막연한 감정이 아닌 견고하고 투명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 모더니즘의 시대적 배경
-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도시와 현대 기계 문명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 사회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
1930년대는 식민지 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로,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 위기에 처한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수탈을 강화하는 한편, 대륙침략을 단행함으로써 위기를 탈출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군사 기지의 목적으로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게 되고,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지게 됨.
즉, 1930년대 모더니즘은 이와 같은 시대적, 사회적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미 모더니즘 이론의 영향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김광균의 시 세계
- 김기림, 정지용과 더불어 1930년대 우리 나라의 모더니즘, 그 중에서도 이미지즘 시 운동을 이끌었던 대표적 시인.
김광균은 도시 문명적 소재를 시각적으로 새롭게 형상화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공감각적 이미지를 적절히 사용하여 감각적 묘사에도 뛰어난 성과를 드러냈다. 또한, 관념적 정서적 내용도 회화적으로 표현하여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 기여한 시인. 이러한 묘사와 함께 도시인이 느끼는 허무감, 고독감 등을 아울러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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