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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대문학

정지용, '장수산1' 해석/해설

by 솜비 2019. 11. 20.




벌목정정(伐木丁丁)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커다란 나무가 베어질 때 나는 쩌렁쩌렁한 소리. 실제로 나무를 벤다는 뜻이 아니라 벨 때 그런 소리를 낼만한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한 산의 장엄함을 표현한 것) (아람도리 :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 (멩아리 : 메아리) 

아름드리 나무가 쓰러졌을 때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쩌렁쩌렁 골짜기를 울리면서 돌아올 만큼 깊은 산골의 적막한 모습

다람쥐도 좇지 않고 묏새도 울지 않어 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작은 짐승의 움직임조차 감지할 수 없을만큼 고요함) (뼈에 사무칠 정도의 적막감 - 촉각적 이미지)  

(눈내린 밤이 종이보다 희구나!)   ->  눈 내린 밤은 종이보다 희어 그 적막감이 화자의 마음 깊이 사무치고 있음을 표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랸다? 

(걷게 하려는 것인가?)  

오늘같은 날 때를 맞추어 보름달이 떠오른 것은 지금같은 밤 분위기와 어울리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화자.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탈속의 모습 - 장수산의 이미지와 조응)  (조찰히 : 아담하고 깨끗하게)  (늙은 사나이 : 웃절 중)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 삶의 태도를 생각하고 배운다, 장수산을 후각적으로 묘사 -> 자연을 인간화)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시름에 젖은 화자의 내면이 드러남)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

       (올연히 : 홀로 우뚝하게)    (슬픔도 꿈도 장수산 속 겨울 한밤의 고요 속에 묻어 버림)

시름을 차갑고 의연하게 견디겠다는 태도.

                                                            - '장수산1', 정지용

 


 

 

-랬거니, 하이, -고녀, -는다? -노니, -랸다 (고풍스러운 시어를 통해 동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장수산 : 황해남도 재령군에 있는 해발 747미터 높이의 산. 황해도의 금강산으로 불림.



* 장수산의 상징 의미 

슬픔도 꿈도 묻어버리는 절대적 고요의 공간.

세상과 단절되어 화자에게 적막함을 느끼게 하는 곳.

이곳에서 화자는 세상과 외롭게 단절되었다는 느낌으로 시름에 젖는다.

'장수산'의 고적함은 겨울의 한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더욱 강화되는데, 

화자는 이곳에서 온갖 세상사를 잊고 세속에 대한 초월과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한다.

'장수산 속 겨울 한밤'은 세속적 가치와 단절된 오직 자연 속에 동화된 무욕의 삶을 상징하면서 탈속의 경지를 드러낸다.



* 의고형 어미의 사용

-랬거니, -고녀, -랸다?, -는다?, -노니

모두 영탄적 어조를 띠고 있다.

이는 자연에서 받은 감흥을 직서적으로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예스러운 어투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신비로운 느낌을 주며,

시에 담겨있는 작가의 내면세계인 동양적 정신세계와도 잘 어울린다.



*'눈과 밤이 종이보다 희고녀'의 의미 

밤이 종이보다 희다는 것은 땅에 내린 눈과의 조응 때문

밤의 어둠이 눈에 종이처럼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이 곧 장수산임을 화자는 노래한다.

이는 현실적인 풍경이라기보다는 화자의 관념 속에서 이상화된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 작품 해설 추가

이 시는 장수산의 공간적·시간적 이미지를 빌어 고요로 표상되는 동양적 세계에 동화되어 하나가 되고싶어하는 화자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

의식의 연속적 흐름과 긴밀성을 표출하기 위한 시적 배려로 문장의 종결부호가 사용되지 않고, 종결어미에 독특한 변형을 가한 특징을 갖고 있다. 화자는 먼저 내부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하이픈으로 끝맺고 있으며, 그 사이에 쩌르렁이라는 의성어를 배치함으로써 울림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청각적 영상을 결국 장수산이라는 공간을 내적 울림으로 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화자가 실제적으로 벌목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장수산의 큰 소나무숲에서 느끼는 고요를 뒤바꿔 표현한 것이다.

화자가 고요뿐인 장수산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늙은 중이 남기고 간 냄새와 같은 무념무상의 탈속적 세계이지만, 그는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는 시름을 갖는 인간적인 내면을 보여준다.

  


- 갈래 : 산문시, 서정시

- 성격 : 감각적, 동양적

- 주제 : 장수산의 절대 고요와 탈속의 세계에 대한 염원

- 특징 : 1. 예스러운 말투를 사용

            2. 산문시의 형태를 취함

            3. 시행의 종결을 의도적으로 거부함

            4. 고요한 자연의 정경과 화자의 내면 의식을 절묘하게 조화시킴





정지용, '장수산1' 원문

벌목정정(伐木丁丁)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묏새도 울지 않어 싶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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