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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각

나를 좋아했던 그남자

by 솜비 2019. 11. 6.

늦은 밤에는 상념이 많아지는 법이다.

문득 떠오르는 그들과의 추억(?)을 좀 끄적거려볼까 한다.

뭔가 그들과의 추억ㅋㅋ이라고 하니 의미심장한데,

사실 나는 연애 기간은 길지만, 소수의 남자와 연애를 했기에 스스로 많이 아쉬워서 ㅠㅠ(웃프다)

나를 좋아했던 남자들을 종종 떠올려 보기라도 한다.

뒤늦게 바람을 필 수도 없으니 ㅎㅎ

그냥 뭐..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날의 이런 소소한 추억거리도 나에겐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키가 크지도 않고,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얼굴이 예쁘지도 않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얼굴.

예쁘장한 얼굴이 아닌데다가 작은 눈, 낮은 코와 덧니에 컴플렉스가 있어서 외모에 자신감이 낮은 편이다.

(이정도면 매우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가 어디가 예뻤는지, 짚신도 짝이 있는건지, 제눈에 안경인건지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은 내 추억속의 남자들 이야기 시작!

 

 

 

 

1.

내가 한창 첫사랑의 그를 사모하던 중학생 때.

그땐 카카오톡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었고, 네이트온도 아닌, 버디버디라는 메신저가 유행했던 시기였다.

롤링 페이퍼나 명단표에 각자 버디버디 아이디를 써서 배포할 정도로 유행이었고,

지금의 카카오톡처럼 반 친구들과 대화할때는 꼭 버디버디를 사용했다.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S라는 아이와 나는 몇시간을 버디버디에서 이야기하고,

함께 게임을 하고, 게임 속에서 서로 도와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친했었다.

별 것 아닌 일상의 대화들 속에서 그는 참 자상하고 속 깊은 아이였고, 우리는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는 첫사랑의 그 아이가 있지만, S의 자상함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S에게 관심이 가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S와 나는 종종 서로 쳐다보고 배시시 웃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도 눈이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S의 눈빛으로 나는 우리가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우리는 '썸'을 타고 있었던 것 같다.

 

S는 당시에 유행했던 무슨데이, 무슨데이를 챙겨주기도 했었다.

링데이인가, 반지를 주는 날이 있었는데 그 전에 나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더니만

눈짐작으로 내 손가락의 사이즈를 파악하고서 링데이에 나에게 반지를 건냈었다.

너무나 반짝거리던 은반지였는데,

예쁘기도 하고 내 생에 몇 안되는 남자에게 받은 선물이라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처럼 나는 S와 버디버디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너무나 솔직했던 나는

(아직까진 S보다는 첫사랑 그애를 더 많이 사랑했기에..)

어느반 아무개를 좋아한다고 말해버렸다. 

돌이켜보면, 아마 S는 꽤나 충격을 받았을거라 생각된다.

어쩌면 S의 고백타이밍을 보기좋게 뭉개버렸던 것일 수도 있다.

당시의 나는 S가 매우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숨김없이 솔직히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내 이기적인 마음이 S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거라는걸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S는 상심이 컸던지, 자신의 친한 친구인 T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고

나는 T에게서 '너 아무개 좋아한다며? S가 그러더라' 라는 소리를 듣고는, S를 향한 호감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친한 친구라 생각하고 내 비밀을 말했던 건데, S가 다른 사람에게 퍼뜨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상했었다.

나는 조금씩 S를 멀리했고, 우리의 썸도 끝이 났다.

 

 

 

 

 

 

 

 

2.

나도 약간의 호감이 갔던 S의 경우와는 약간 다르게, 두번째 이야기의 남자는 일방통행이었다.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아니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싫어하는! 고백방법이 바로 '사람이 많은 곳에서의 고백'이다.

그것도 일면식이 없는 남자라면 여자들이 굉장히 극혐할 고백방법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썸 상태거나 서로 사귀던 중의 프로포즈 같은 것은 사람많은 곳에서의 고백도 나름 괜찮음 - 이것도 사람마다 다름)

 

아무튼, 두번째의 남자 O가 바로 그런 고백 방법을 썼던 남자였다.

O는 나와 일면식이 없었는데 (같은 학교라서 오다가다 나를 보고 마음에 품었던 것 같다)

그는 사람 많은(일부러 끌어모은) 곳에서 갑작스레 나에게 고백을 해왔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굉장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모르는 남자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백을 한 상황.  나는 그 고백을 받아들이기도 뭐하고, 거절하기도 뭐했다.

거절하자니 주변의 야유가 있었고, 고백을 받자니 생판 모르는 남자와 사귄다는건 스스로 이해가 안갔다.

처음에는 그냥 도망가려니 그걸 또 이리저리 막아서 어찌나 난감하던지...

일단은 O가 주는 편지와 꽃을 받고 그자리를 도망쳐 나왔고, 나는 바로 거절의 답장을 써서 그에게 전달했다.

나에게 거절당했던 그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는데

내 친구들은 그게 무섭다고 팔뚝을 손으로 비벼대곤 했다.

O는 간혹 무슨 데이때 나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했는데,

대부분 받지 않고 돌려보냈고 아마 한번쯤은 그냥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졸업할 때까지 그랬던 것 같은데 잊을만하면 한번씩 무언가를 보내와서 본인의 존재감을 상기시키곤 했다.

O 덕분에 나는 내 첫사랑에 대한 마음이 더 굳건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미지가 너무 상반된 사람이라)

 

 

 

 

 

 

3.

내가 한창 연애를 하던 시절.

잠수를 타던 남친 때문에 속상해서 상담하다가 친해지게 된 친구 Y가 있었다.

나는 남친 때문에 힘든 이야기를 털어놨고, 착한 Y는 그런 나를 많이 위로해주었다.

학교에서는 서로 바쁘다보니 얼굴보고 인사하는 정도였고, 주로 메신저나 문자로 이런저런 대화를 하곤 했다.

 

어느날 또 잠수 기간에 들어간 남친 욕을 Y에게 신나게 하고 있었는데 Y가 갑작스레 만나자기에

만나서 밥을 같이 먹고, 길거리를 거닐며 대화했고, 카페도 갔다.

훗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데이트라고 말만 안했지 데이트랑 비슷했던 것 같다. 물론 스킨십은 전혀 없었지만.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그랬던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날은 갑작스럽게 우리집 근처라고 연락이 왔다.

마침 다른 곳에서 볼일이 있던 터라 오늘은 바빠서 만날 수 없다고 했더니 '보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아쉽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그때서야 Y의 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종종 장난스레 자기랑 사귀자던 그의 말이 진심이었음을 깨달았다.

잠수타던 남친(현남편ㅋㅋ)을 사랑하고, 또 의를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미안하지만 Y에게 여러번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래도 한동안 Y는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곤 했지만, 결국은 나와 연락을 끊음으로써 Y는 나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고맙고 미안했던 친구라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4.

세번째까지 적고는 마무리 하려는데

좀 특이했던 경험이 갑자기 떠올라서 적어본다.

이십대 중반이었던 나는 퇴근하고서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내리막 길 끝에 위치한 집으로 열심히 걷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도 내리막이라 빨라질 수 밖에 없었는데

우리집 건물로 들어서려는 순간 '저기요! 저기요!'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나를 부르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채로 계단을 오르는데

웬 예비군복을 입은 남자가 쫓아왔다.

꽤나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나를 불러세웠던 것이다.

그리고는 '왜이렇게 걸음이 빠르냐고, 아까부터 불렀다'고 했다.

집이 코앞인데다가 건물 안까지 들어온 낯선 남자라 잔뜩 경계를 하고 무슨 볼일인가 하고 쳐다보고 있었는데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쫓아왔다며, 나보고 너무 예쁘다고 했다.

순간 '응???'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내가? 내가 예쁘다고? 정말? 리얼리? 시력 없음?

누군가가 예쁘다며 쫓아온적이 단한번도 없을 정도로 나는 그냥 평범한데다가 덧니가 심해서 옆모습 또한 가관이었다.

근데 그런 내가 예쁘다고 쫓아왔다니... 이건 핑계구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구나 싶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예쁘다는 소리를 몇 분 안에 백번은 족히 넘게 말하는 것이었다.

진짜 이상하고 이해가 안가면서도 '예쁘다'라는 소리는 마법처럼 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남자의 찬양은 번호를 달라는 말과 함께 계속 쏟아져나왔고,

집앞인데 이 남자가 돌아가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됐다.

실제로 나는 남자친구가 있다며 거절했는데,

남자는 괜찮다며, 골키퍼 있다고 골 안들어가겠느냐며 꿈쩍도 안하고 계속 번호를 달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번호를 주고 돌려보냈는데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여기저기 자랑했더란다ㅋㅋ

남친에게도 자랑했더니 조용히 기분나빠하기에

그 남자에게는 아무래도 남친이 기분나빠한다고 미안하다고 하며 연락을 끊었다.

(카톡으로 대화 몇 마디 나눈 것 밖에 없었지만)

 

 

 

써놓고보니 내가 참, 잘 모른다는 이유로 상처를 준 나쁜 여자였구나 싶다.

예쁜 부분 하나도 없는 나를 좋아한다고 해준 사람들인데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걸 깨닫게 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지금은 다들 행복하게 잘 지내겠지 :)  잘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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