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환경의 중요성

사회초년생 시절, 어느 보습학원에서 강사를 하다가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하면서 학원강사보다 일찍 출퇴근하는 다른 직종도 알아보게 되었는데
마침 집 가까운 곳에 일자리가 있어서 면접을 보고 일을 하게 되었다.
그곳은 일용직 일자리를 소개, 연결해주는 어느 작은 인력사무소였다.

내가 하는일은 사무실관리, 몇가지의 장부와 DB관리.. 한마디로 경리였다.
아침에 출근하면 간단한 청소를 하고, 커피머신에 커피나 종이컵 같은걸 채우고, 화분에 물을 주는 일 등을 했다.
그즈음 이른아침부터 일하는 노동자들을 근무지까지 데려다준 남직원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처음에는 학원강사처럼 늦은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점이 좋았다.
극성맞은 초딩 중딩들의 텃세, 허세, 성희롱적 발언들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좋았다.
10시간을 풀로 떠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주말까지 일하고 한달내내 쉬지 못하는 시험대비 기간이 없다는 점도 좋았다.

그러나 세상에 쉬운일은 없다했는가.
인력사무소에서 불과 일주일도 일하지 않았는데 여러 사건들을 겪게 되며 그곳이 학원보다 더 힘든 곳임을 느끼게 되었다.
제일 먼저 피부에 와닿은건 그곳의 근무환경이었다.
매일같이 일용직 노동자들과 남직원들(40대이상 과장님 부장님 하는 사람들)이 다투거나 욕설이 오갔고, 경찰이 출동하는일도 여러번 있었다.
나는 노동자들과 직접 대면하지는 않는지라 스트레스는 없을거라고 했던 말과 다르게 그곳 환경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말다툼하고 싸우는 소리가 불안감을 불러일으켰고 저러다 여기에 불지르는건 아닌가, 칼부림 나는건 아닌가 (동네가 외국인이 많고 범죄도 제법 잦은 곳이었다) 하는 생각들이 끝없이 피어올랐다.

사무실에서 꽤 오래 근무한 남직원들은 이미 인상부터가 강했고, 그곳 일에 잔뼈가 굵어 그런 싸움들이 익숙해보였다.
게다가 직원들은 모두 일상 대화의 반 이상이 욕설과 비속어들이어서 내가 적응하기에 무척 힘이 들었다.
심지어 나도 욕을 꽤나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내 정신이 피폐해짐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다가 여기에서 오래 일하면 안되겠다 싶은 사건들이 생겼다.
대표인지 사장인지 부장인지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고용주가 사업장을 여러개 가지고 있었는데
알게 모르게 꽤나 불법적인 일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당시에 입사한지 일주일도 안된 나와 어린 남직원(일이 힘들어서 얼마 안가 관두었다)을 데리고 가짜 사업장으로 가서 우리에게 거짓말을 시켰는데 그게 들통이 났다.
무슨 법을 들먹이며 사장이 거짓말 시켰다고 거짓말 그대로 말하면 큰일난다고 무슨공무원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듣기도했다.
자초지종, 전후사정 아무것도 모른채 사장이 시키는대로만 대답했는데 내가 순식간에 의도치않게 범법자가 될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바로 그만둬야겠다 하고 마음먹게 되었다.

장부 조작, 데이터 조작도 기본적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각보다 적게 일하면 가차없이 최저시급을 적용했다.
(알고보니 노동자들과 다투던일이 이것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노동자들이 계산한 자기 급여와 사무실에서 준 급여가 너무 차이나서)
그래놓고 노동자들이 따지면 '법대로했으니 꼬우면 신고해라' 였다.

힘들게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당에서 일부를 챙기는 그 일이, 내가 받는 월급과 내가 하는 일들이
노동자들을 등쳐먹는 일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사무실이 답답하고 스트레스였던 나는 점심시간 1시간이 참 꿀맛이었다.
나의 자유시간에 밥을 먹고 주변을 산책하다가 점심시간이 끝나기전에 복귀하곤했는데
나중에 젊은 남직원한테 들었는데 다른 나이있는 남직원들이(과장인지 부장인지 하는분들) 내 뒷담을 하더란다.
점심먹고 바로 안들어오고 한시간 다쓰고온다고..ㅋ
그 시간에 와서 일해야지 안하고 논다고 뭐라했다고한다.
(심지어 내가 일찍 들어가도 할일도 없음. 오전에 다끝나는 일들이고, 월말월초만 바쁜지라..)
게다가 점심시간은 엄연히 법적으로 내 노동시간이 아닌데도 일찍와서 일 안한다고 뒷담을 했다니 세상 어이없음


그런 환경과 뒷담과 차마 다 적지 못하는 불법적인 일들을 여럿 목격하고 겪게 되어
결국 한달 남짓 일을 하고는 관두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약속된 급여가 아닌, 최저시급으로 받았다...ㅎ (진짜 더럽고 치졸하더라)

그곳에서 일을 하고 다시 학원강사일을 하게되니
하나하나가 천국같았다.
틱틱 쏴대는 애들도, 늦게 출퇴근 하는일도, 쉬지도 못하고 내리 한달을 일하는 것도...
매일 욕하고 싸우는소리가 들리지않고, 서로 존중하는 환경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참 편했다. 

모든 학원이 빡세진 않듯이, 모든 인력사무소가 험하거나 불법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험한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고나니 직장환경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서로를 무시하는 환경이냐, 존중하는 환경이냐..
불법적인 일이 많아 언제든 범법자가 될수 있는 환경이냐 아니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가랑비에 옷젖는줄 모른다는 말처럼,
세월이 쌓여 내 표정들이 그대로 주름이 되어가는것처럼,
어느순간 '나'를 돌아봤을때 생각했던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나'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들이 들어서 그후로는 직장내 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따지게 된다.




(내가 일했던 직장은 현재는 없어져서 다른 곳으로 바뀜.
특정 직업, 직장, 사업장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거의 십년전의 기억들이기때문에 내 기억과 다른점이 있을수있음을 밝혀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말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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