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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고전문학

이옥, <심생전> 줄거리, 정리

by 솜비 2020. 8. 25.

심생은 서울의 양반이다. 약관의 나이에 용모가 매우 준수하고, 풍정이 넘쳤다.

어느 날 운종가에 나가 임금님의 거동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건장한 여종이 자주색 명주 보자기로 한 처녀를 덮어씌워 등에 업고, 머리를 땋은 여종은 주홍색 비단신을 들고 뒤를 따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어림짐작으로 보자기 안의 몸을 재어보니 어린 여자 아이는 아니었다. 드디어 심생은 바짝 붙어 뒤를 쫓았다. 멀찍이 따르다가 소매로 스치며 지나가기도 하면서 눈은 한 순간도 그 보자기를 떠나지 않았다. 걸음이 소광통교(서울의 지명)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앞에서 일어나 자주색 보자기를 반이나 들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녀가 나타나는데 복숭아 빛 발그레한 뺨에 버들가지 같은 가는 눈썹, 초록 저고리에 다홍치마, 연지분이 몹시 고와 설핏 보아도 절색이었다.

처녀도 보자기 속에서 어렴풋하게 아름다운 소년이 쪽빛 두루마기에 초립을 쓰고, 좌우 이쪽저쪽으로 따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추파(秋波)를 들어 보자기 밖의 소년을 한참 주시하던 중에 보자기가 걷히고 버들 같은 눈과 별과 같은 눈동자 네 개가 부딪쳤다. 놀라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보자기를 당겨 다시 덮어쓰고 자리를 떴다.

심생이 어찌 그대로 놓치겠는가! 곧장 뒤를 쫓아갔다. 소공주동(서울의 지명) 홍살문 안에 이르러 처녀는 중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심생은 망연자실하여 한참을 배회하다가 이웃 노파를 붙들고 자세히 알아보았다. 늙어서 은퇴한 호조 계사(회계원)의 집이요. 딸 하나만을 두었고, 나이는 열 예닐곱이요, 아직 시집가지 않았다는 등등. 처녀가 거처하는 곳을 물었더니 노파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좁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회칠한 담이 하나 나올 거유. 담 안에 작은 집이 한 채 있는데 바로 처자가 거처하는 곳이라우."

 

노파의 말을 듣고 난 심생은 아무리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저녁이 다가오자 집에서 거짓말을 꾸며 댔다.

 

"서당 친구가 저랑 밤을 같이 보내자고 하니 오늘 밤부터 가불게요."

 

드디어 인정(人定)이 되기를 기다려 그 집으로 가서 담을 넘었다. 초승달이 어스름 빛을 드리운 창밖에는 꽃과 나무들이 제법 아담하게 가꾸어져 있고, 창호지에 비치는 등불은 아주 환하였다. 벽에 등을 대고 처마 밑에 앉아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방 안에는 여종 둘이 함께 있었다. 처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언문 소설을 읽는 중이었는데 꾀꼬리 새끼가 우는 듯 낭랑하게 들려왔다.

삼경 무렵, 여종들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처녀는 그제야 "훅!" 등불을 끄고서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슨 고민이라도 하는 듯 몸을 뒤척거렸다. 심생은 잠이 들 리도 없었고 숨을 낼 수도 없었다. 새벽종이 울릴 때까지 그대로 있다가 담을 타고 나왔다.

그로부터 일과로 날이 저물면 가서 파루가 치면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한 지 스무날이 되었어도 심생은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처녀는 처음에는 소설도 읽고 바느질도 하며, 한밤에 등불이 꺼지면 잠도 잤으나,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였다. 예니레를 넘기자 "몸이 편치 않다."라고 말하고 겨우 초경(初更)인데도 베개를 베고 누워서는 자주 손을 던져 벽을 쳤고, 긴 한숨 짧은 탄식이 창을 넘어 들려왔다.

하루하루 밤을 보낼 적마다 심해지던 스무날째 저녁, 처녀는 홀연히 마루 뒤쪽으로 나와서 벽을 따라 돌아 심생이 앉아 있는 장소에 이르렀다. 심생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불쑥 일어나 처녀를 잡았다. 처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은 소광통교에서 만났던 분이 맞지요? 소녀는 도련님이 여기를 찾아오신 지 벌써 스무날인 것을 잘 알아요. 저를 잡지 마세요. 소리를 지르기만 하면 다시는 여기를 나가지 못해요. 저를 놓아주시면 제가 틀림없이 이 문을 열어 맞이할 거예요. 어서 저를 놓아요."

 

심생은 곧이듣고 뒤로 물러서서 기다렸다. 처녀는 다시 빙 돌아서 방에 들어갔고, 그 다음에 여종을 불러 분부하였다.

 

"어머니한테 가서 큰 주석 자물쇠를 달래서 갖고 오너라. 밤이 아주 캄캄하여 겁이 난다."

 

여종이 안방으로 가더니 오래지 않아 자물쇠를 갖고 왔다. 처녀는 드디어 약속한 뒷문에다 문고리를 아주 분명하게 걸고 손으로 자물쇠를 채우되 일부러 "철거덕!" 거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바로 등잔불을 껐다. 정적에 쌓여 잠이 깊이 든 듯했으나 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심생은 속은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얼굴 한 번 본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렇게 걸어 잠근 문 밖에서 다시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돌아왔다. 다음 날도 가고 그 다음 날에 또 갔다. 심생은 문이 잠겼다고 해서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가 내릴 때는 우비를 쓰고 갔다. 비에 젖는 것도 거리끼지 않았다.

 

 이와 같이 다시 10여일이 지난 어느 날이다. 온 집안이 모두 잠에 빠지고 처녀 역시 등불을 끈 지 오래된 한밤중, 처녀가 별안간 벌떡 일어나 여종을 불러서는 등불을 밝히라고 하였다.

 

 "너희는 오늘 밤 윗방에 가서 자거라."

 

 두 여종이 문을 나서자 처녀는 벽 위에서 열쇠를 꺼내어 자물쇠를 끌렀다. 그리고 뒷문을 활짝 열고는 심생을 불렀다.

 

 "방으로 드시지요."

 

 심생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벌써 몸이 방에 들어와 있었다. 처녀는 다시 문을 잠그고 심생에게 말하였다.

 

 "잠시만 앉아 계세요."

 

 그러고는 윗방으로 가서 부모를 모셔왔다. 여자의 부모는 심생을 보고 매우 놀랐다. 처녀가 말하였다.

 

 "놀라지 마시고 제 말을 들어 보세요. 제 나이 열일곱에 여태껐 문을 나가 본 적이 없어요. 한 달 전 우연히 임금님 거동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광통교를 지나게 되었어요. 그 때 바람이 불어서 보자기가 날리는 통에, 마침 선비와 눈이 마주쳤지요. 그 날 저녁부터 선비는 밤마다 오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이 문 아래 숨어 기다린 지 벌써 30일이 된답니다. 비 오는 날도 오고, 추워도 오고, 문을 잠그고 거절해도 계속 왔어요. 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만일 저녁 때 들어와서 새벽에 나가는 것을 이웃들이 알게 되면, 창문 밖에서 홀로 있었다고 어느 누가 생각하겠어요?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비난을 받을 테지요. 저 분은 양반 자제로서 젊은 나이에 혈기가 왕성해서 벌이 꽃을 탐하는 것만 알아요.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 며칠 안 가서 병이 나지 않겠어요? 병이 나서 일어나지 못하면 내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내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 해도 반드시 하늘이 보복할 거에요. 게다가 저는 중인 집의 딸에 불과하고, 꽃을 부끄럽게 할 만큼 미모도 뛰어나지 않는데, 선비께서 제게 정성을 들이는군요. 이렇게 노력하는데 선비를 따르지 않는다면 하늘이 미워하셔서 벌을 내리시겠지요. 저는 결정했어요 부모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아! 부모님 연세가 많으시고 형제가 없어서, 데릴사위를 얻으려고 했어요. 살아 계실 때 봉양을 다하고 돌아가시면 제사를 받드는 것이 제 바람인데, 일이 이렇게 되고 마는군요. 이것은 운명이니 말한들 어쩌겠어요?"

 

 부모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심생 역시 할 말이 없었다. 이윽고 처녀와 같이 자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 어떻겠는가?

 이 날 저녁 처음으로 방에 들어간 후부터 날마다 저녁이면 가서 새벽에 돌아오곤 하였다. 여자 집은 본래 부자라서 심생에게 좋은 의복을 많이 주었다. 하지만 심생은 집에서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옷을 입지 못하고 깊이 숨겨 두었다.

 심생의 집에서는 심생이 밖에서 자는 날이 길어지자 의심하고는 산사로 가서 공부하라고 하였다. 심생은 속으로 원망하였으나 집에서 재촉하고 친구들에게 이끌려 북한산성으로 책을 싸서 올라가 선방에 머물렀다.

 

 한 달이 될 즈음 처녀의 편지가 도착하였다. 펼쳐보니, 영영 이별을 고하는 유서였다. 여자는 이미 죽은 것이다. 편지는 이러하다.

 

 봄추위가 아직 매서운데 산사에서 공부하시면서 안녕하신지요. 사모하는 마음을 하루하도 잊을 수 없답니다. 저는 낭군이 나가신 뒤 우연히 병이 들었어요. 병은 점점 깊어져 약을 먹어도 소용없으니, 이제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복 없는 사람이 산다고 또 뭐하겠어요? 다만 세 가지 큰 한이 가슴에 맺혀, 죽어도 눈을 감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무남독녀로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답니다. 장차 데릴사위를 얻어 부모님이 늙으셨을 때 의지하려고 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나쁜 인연이 얽힌 거죠. 넝쿨이 외람되어 큰 소나무에 의탁하였으나 결혼의 계획이 어그러졌습니다. 그래서 우울하여 병이 들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요, 늙으신 부모는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것이죠. 이것이 첫 번째 한입니다.

 여자가 시집가면 종이라 하더라도 기생이 아니라면 남편이 있고 시부모가 계시죠. 시부모가 모르는 며느리는 세상에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몇 달이 되도록 낭군의 늙은 여종 한 명 보지 못하였어요. 살아서는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죽어서는 돌아갈 곳 없는 혼백이 되겠죠. 이것이 두 번째 한입니다.

 부인이 남편을 섬기는 것은 음식을 만들어서 받들고 옷을 지어 드리는 것입니다. 낭군을 만난 시간은 짧지만은 않고 손수 지은 의복 또한 적지 않죠. 그런데도 낭군께 집에서 밥 한 그릇 드시게 하지 못하고 옷 한 벌 입혀드리지 못하였어요. 낭군을 모신 것은 잠자리뿐이니, 이것이 세 번째 한입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이별하게 되어 병들고 죽게 되는군요. 얼굴을 뵐 수 없는 것은 저의 슬픔일 뿐이지 어찌 낭군께 말씀드리겠어요? 생각이 이에 미치니 애가 끊어지고 뼈가 녹으려 하네요. 약한 돌이 바람에 눕고 떨어진 꽃이 진흙이 되어도 깊고 깊은 이 한은 어느 때 사라지겠습니까? 아아! 만남은 이로써 끝이군요. 낭군께서는 못난 저를 생각하지 마시고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몸 성히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몸 성히 계세요.

 

 심생은 편지를 보고 울음과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통곡한다 한들 어쩔 수 없었다.

 그 후 심생은 공부를 그만두고 무과에 응시하여 금오랑이 되었는데, 그 또한 일찍 죽었다.

 

 매화외사가 말한다.

 내가 서당에서 공부하던 열두 살 때 날마다 친구들과 옛날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선생님이 심생의 일을 자세히 말씀하셨다.

 

 "심생은 내 어릴 적 동무란다. 산사에서 편지를 보고 통곡할 때 내가 보고는 그 일을 듣게 되었구나. 지금도 잊을 수 없단다. 너희보고 이런 풍류남아를 본받으라고 하는 게 아니니라. 사람이 반드시 얻고자 하면 방 안에 있는 여자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야. 하물며 공부나 시험은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새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였는데, 후에 <정사(情史)>를 읽어보니 이와 같은 이야기가 많았다. 이제 기록하여 <정사>의 보충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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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아름다워서 원문을 찾아봤더니 이거 참...;;;

처녀가 너무 불쌍하다 ㅠㅠ

 

 

 

 

 


이옥, <심생전> 내용 정리
 
조선 정조 때에 이옥(李鈺)이 지은 전(傳). 
​김려(金鑢)가 편찬한 『담정총서(藫庭叢書)』 권11 「매화외사(梅花外史)」에 실려 있다.

그의 전(傳) 21편 중 유일하게 신분이 다른 두 남녀의 애정을 소재로 입전(立傳)한 작품이다


「심생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의 사족(士族) 집안에서 태어난 심생(沈生)이 우연히 길을 가다가 호조계사(戶曹計士)로 노퇴한 중인(中人)의 딸과 눈이 맞아 뒤를 쫓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심생은 매일 밤 담장을 넘어 처자의 방문 앞에 기다리기를 한 달을 한 뒤에 뜻을 이루었다.
 
그러나 심생의 부모가 이를 알고 그를 북한산 산사로 공부하러 보냈다. 그녀는 심생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병이 들었다. 죽음이 임박하여 심생에게 편지를 보내어 하직하고는 죽었다. 그녀의 죽음을 뒤늦게 안 심생은 글공부를 버리고 무과에 급제하여 금오랑(金烏郞)에 올랐으나 요절하였다.
 
「심생전」의 서술자는 사평(史評)에서 이 이야기를 12세 때에 시골 학당에서 선생으로부터 들었다. 선생은 심생과 동창으로 절에서 편지를 받았을 때에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옥은 이 내용이 실재한 것임을 밝히고, 정사(情史)에 추록하기 위하여 쓴다고 하였다. 또, 풍류낭자의 일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모든 일에 대하여 진실로 얻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없음을 일깨워 주려고 들려준 것이라는 교훈성을 내세우고 있다.
 
「심생전」은 서술자의 이러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두 남녀의 신분갈등으로 인한 혼사장애 모티프는 조선 후기 신분질서의 동요라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여주인공이 언문소설을 즐겨 읽었다는 것을 통해서 당시 국문소설 독자층은 여주인공과 같은 부유한 중인이나 상인의 부녀자였음을 알게 한다.
 

 

 
의의와 평가
「심생전」은 한 인물의 성격을 확인하기 위한 행적의 삽화식 서술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사건의 시말을 장면 제시적으로 서술을 하여 서술의 야담취향성을 보여 준다. 사건의 결말이 설화나 소설과는 달리 비극적인 것은 사실에 입각해서 기록해야 하는 전(傳)의 장르적 성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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