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4주 0일 - 밀린 일기

밀린 일기 ㅜㅜ

 

 

11월 25일 수 (임신 23주 5일)

 

결혼하고 독립하고서야 겨우 길고 긴 평행선상의 전쟁을 휴전하려나 했더니... 이따금씩 또 반복된다. 참 악연인듯.... 

핏줄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가치관도, 생각도, 생활방식도...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다르고

상대방은 '배려와 이해'라는 것 자체를 모른다.

그저 자기 방식대로 맞춰라, 이래라 저래라의 반복...

또 반복된 싸움에 나는 너무 기분이 안좋아서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울고나서 뱃속의 아기는 괜찮은지 걱정이 되면서 또 한번 현타가 와서 울었다.

내 행동이 혹시나 내 자식한테  안좋은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엄마의 마음이 아닌가?

왜 내 엄마는...? 

아기를 갖기 전에도 이해가 안갔는데, 임신하고 나니 더더욱 이해가 안간다.

 

스트레스 받은건지, 눈치보는건지... (이또한 미안했다ㅜㅜ) 너무나 얌전해진 태동을 몇번이고 확인하고, 

나는 내가 겪은바와 같은... 그런 엄마는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몇번이나 약속했다.

너무 힘들고 슬펐는데 M모씨와 신랑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으면서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11월 26일 목 (임신 23주 6일)

 

이 무슨 웃기지도 않은 상황인것인지...

내가 연락해서 오라고 할 수 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통화하며 서로 서운했던 점을 조금이나마 얘기하면서 풀긴 했으나 

마음 속의 만년설같은 미움은 여전히 녹여낼 수 없는 것 같다.

한창 전쟁같이 힘들 때 했던 극단적인 생각들이 또 스멀스멀 피어났다. 

나도 모르게 시작되어 일부러 상상을 하고 있었다.

태교에도 참 안좋은데 말이지...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얼굴을 대면하고서부터는 티를 안내려고 노력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너무 피곤하니까 더 힘들고 예민했는데 다들 이해해줘서 다행이었다.

 

 

 

 

 

11월 27일 금 (임신 24주 0일)

 

사이가 나쁘지 않을땐 애증, 사이가 나쁠땐 증오...

싸울때마다 반복하며 오가는 감정 속에서 역시나 증오를 확신했는데 

그래도... 힘들거나 좋아하는 모습을 볼때면 짠하다. 

이 지긋지긋한 인연은 언제 끝이 나려나...

어제도, 오늘도... 착한 신랑 덕분에 마음이 편해져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정상이 아니라며 무정한 친가 식구들은 다 홀대하고 무시하는데...

신랑은 그 불쌍한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손잡아주고... 참 따스한 사람이다.

춥고 어두운 암흑 속에서 나를 꺼내준 사람...

항상 빚진 느낌... 내가 늘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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