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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각

너를 보내고...

by 솜비 2021. 11. 4.


2021년 10월 31일 일요일
한낮의 갑작스러운 전화로 동생의 부고를 들었다.
작년에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기 때문에 마음에 큰 동요는 없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싱숭생숭하고 정신이 없이 하루가 지났고,
타지역에서 사망하여 코로나 검사며 검안이며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살던 지역에 도착하여 장례식장이 잡혔다.
장례식장이 잡히지 않은데다가, 우리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오후엔 짐을 챙겼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기를 서울 시가에 맡기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데 그때서야 눈물이 났다.
아기에게 신경이 가 있어서 내 감정을 잘 몰랐던 탓이겠지.
가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고,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울며 들어가니 영정사진이 왜 그렇게 낯설고 서럽던지...
남들 앞에서 소리내어 울어본적이 없는데 그냥 울어버렸다.

너의 이름자 앞에 왜 故가 붙어있니..
너의 사진에 왜 검은 띠가 둘러져있니...
국화꽃들로 둘러쌓인 너를 보는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월요일 아침, 서울 시가에 아기를 맡기고 가느라 차가 많이 밀려서
입관 시간인 오전 11시에 맞춰 갈 수가 없었는데 차라리 입관을 못보는게 낫다 싶었다.
봐도 마음 아프고, 못봐도 마음 아픈 일이지만... 내 기억에는 예쁜 모습으로만 기억에 남으면 좋겠어서.


부모는 상주가 될수 없다며, 검은 옷 하나 주지 않았고, 급작스럽게 남편이 상주가 되었다.
가는 길에도 음식이 들어가지 않더니, 도착해서도 먹히지 않아서 밥 두술을 겨우 욱여넣었다.
5시쯤 되니 슬슬 속이 쓰리고 배가 고픈것 같아서 가방에 있는 샌드위치를 꺼냈는데
평소에 좋아했던 음식이니 그걸보니 또 눈물이 났다.
하나를 고스란히 젯상에 올리고, 같이 먹자며 나도 먹었다.
늘 맛있는게 있으면 누나 준다면서 안먹고 보관해두었다가 내가 오면 꺼내주고 그랬는데..
욕심 많은 누나는 이제서야 너에게 먼저 나눠주는 것 같다.


문상객들이 다 떠나고 가족만 남은 밤늦은 시간이 되자 배가 고파왔다.
그때서야 밥을 제대로 챙겨 먹었는데 다행히 좀 먹을 수 있었다.
몇년 만에 얼굴보는 사촌동생들하고 얘기를 나누며 밤을 샜다.
그러고보니 10년전에 할아버지 돌아가셨을때도 밤새며 얘기 나누던 멤버라며.. 웃고 떠들었다.
아마 동생도 옆에 앉아 같이 낄낄대면서 웃었을테지.

동트고 6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조금 붙이고 일어나서 제를 올리고 발인이 시작되었다.
관을 보니 다시 눈물이 났다. 우는 엄마를 진정시키고 운구차에 타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추모공원에 도착하여 관이 내려질 때부터, 엄마가 오열을 했다.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장을 하러 들어가기 직전에 잠깐 인사를 하라는데 관을 붙잡고 목놓아 울어버렸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구나 싶어서..
남은 시신마저 불에 타는거니 정말로 가버리는구나 싶어서...
엄마랑 관붙잡고 우는데 억지로 관에서 떼어서 화장터를 향해 관을 가져가버렸다.
엄마를 붙잡고 진정시키다가 유족 대기실에 들어가있는데 엄마는 많이 진정되었는데 내가 진정이 안되었다.
바로 정면에 있던 이름과 영정사진을 보는게 너무 힘들었다.
남편한테 바람 좀 쐬고 오자고 하면서 둘이 나와서 밖에서 바람 쐬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시간이 지나 유골함을 전달받았는데 또 울음바다가 되었다.
손자가, 아들이, 동생이... 따뜻한 뼛가루가 되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닿을 수 있는 시간... 부디 편히 쉬라고 빌고 또 빌었다.
30년 가까이 힘들고 아프던 삶, 다 잊고 이제서야 편안하게 쉬라고... 편히 가라고...

집에 와서 빨리 애기 데리러 가라는 엄마한테 같이 유품을 정리 하자고 했다.
분명히 정리할 것도 많을 거고.. 엄마 혼자 하기엔 너무 많을 테고.. 정리하며 분명 울테니...
사람 많고 정신없을때 웬만한건 다 정리해버리자고 했다.
많은 물건들을 정신없이 버리고 또 버리고 정리했다.
근데 유독 아꼈던 물건들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워낙에 자기 물건 아끼던 녀석인지라.. 한켠에 잘 두고 나중에 천천히 정리하기로 했다.
발인날 종일 정리하고서 다음날 점심때까지도 정리를 했다.
얼추 정리가 된 것 같고 우리도 계속 아기가 마음에 걸려서 점심때 아기를 데리러 출발했다.




작년에 진짜로 마지막인 줄 알고 거의 한달 내내 울면서 지냈다.
중환자실에 누워 의식불명인 상태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기가 쉽지 않았다.
기적적으로 소생했고, 의식을 되찾았지만 예전같지 않은 모습들에 나는 이미 그때 동생이 떠났다고 여겼다.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반응하는 모습들이 기특했지만, 너무나 달라졌으니...
그래서 그때 마음을 정리해놔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로 겪으니 참 힘들다.
자식을 잃은 엄마처럼 힘들겠냐마는...
철딱서니 없던 시절에 잘해주지 못했던 것들만 생각나고, 해주지 못했던 것들이 자꾸 생각났다.
남들 반만큼이라도 건강히 살다 가지...

7살, 그 어린 나이에 힘든 수술과 치료를 받으며
남들처럼 해보고 싶은 것들 마음껏 해보지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들 마음껏 먹지도 못하고
남들과 다르다고 구박받고 멸시받고 무시당하며 모진세월 잘 버텨주었다.
이제는 진짜 편히 쉬어라.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여기서 힘들었던 만큼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다가
세월이 흘러 나중에 나중에 또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못해줬는데.. 누나가 정말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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