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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대문학

박태원, <천변풍경> 정리

by 솜비 2021. 2. 28.

박태원(朴泰遠)이 지은 장편소설. 1936년 8월부터 10월, 1937년 1월부터 9월까지 ≪조광 朝光≫에 연재되었다. 그 뒤 1938년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이 작품은 2월초부터 다음해 정월 말까지 1년간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서민의 생활 모습을 50개의 절로 나누어 서술한 소설이다.

7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서울의 특정 지역에서 영위되는 다양한 삶의 생태와 음영을 드러내지만 특정 주인공이 없다는 점에 유의하게 된다. 이는 이 소설이 특정 화자에 의하여 서술되지 않았으며 다양한 서술 양식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기교 작가나 모더니즘 작가로 평가되기도 하는 박태원은 이 소설을 통하여 단순하고 미묘한 것까지도 아주 풍부하고 흥미 있게 이야기해줌으로써 작가의 역량을 재차 확인해준다.

행랑살이 어멈, 신전 주인, 이발사, 포목전 주인, 한약국과 양약국 주인, 부의회 의원, 사법서사, 금은방 주인, 카페 여급, 기생, 미장이, 첩, 여관 주인, 당구장 보이, 아이스케이크 장수, 전매청 직원, 공녀…… 등이 등장한다.

1930년대 서울에 거주하던 각종 직종의 인물들이 총괄적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은 실재의 거리와 지형·동명·건물들과 같은 도시의 물리적 사실들이 그대로 제시되고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인습과 근대적인 문물이 혼합되어 그려져 있다. 소설의 구심점을 깨기 쉬운 이 소설은 다안적(多眼的) 시점을 선택하여 삽화적 이야기를 다중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여인들의 집합소인 빨래터와 남성들의 사교장인 이발소를 양극으로 집중 확산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일상적 생활 양식과 생태를 재현시키는 데 성공한다. <천변풍경>을 ‘경아리문학’의 성공적인 수립으로 평가하는 까닭은 서울의 도시적 삶을 성공적으로 묘사한 데 있다기보다는 풍부한 중산층의 경아리 언어를 사용한 작가의 문체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세태소설이라는 평가나 도시소설이라는 논의도 세태나 도시의 풍속을 세밀하게 묘사하였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세밀한 세태의 추사를 통하여 당대의 진실을 추구하려는 작가정신에 근거한 것이라 하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작품해설

1936년 『조광』에 3회 연재한 중편과 이듬해 같은 잡지에 9회 연재한 중편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개작하여 엮은 박태원의 장편소설.

1938년과 1947년에 박문서관에서 출간되었다. 연재 당시부터 크게 주목을 받아 리얼리즘의 확대나 세태소설과 관련된 논쟁을 야기한 바 있으며, 박태원의 창작 기법과 소설 미학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천변풍경」은 약 1년 동안 서울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하여 벌어지는 서민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모두 50절로 나누어져 있는 이 작품에는 약 7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돈과 생활의 안정이 주는 세속적인 행복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중산충의 인물들, 가난은 숙명이며 돈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서민층의 인물들, 봉건적 인습과 남성의 억압적 지배에 의해 피해 받는 여인들, 세상의 진실과 허위를 발견하며 성장해 가는 아이들 등 다양한 인물들의 생활상이 파노라마 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묘사의 과정에서 서술자는 주관적 개입을 제한하고 객관적인 표상만을 제시한다. 묘사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이나 비판보다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서술 태도로 인해 이 작품은 발표 당시에 ‘리얼리즘의 확대’라는 호평과 ‘파노라마적인 트리비얼리즘에 불과한 세태소설’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이 작품은 또한 도시 서민들의 세태를 총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천변풍경」은 청계천변을 떠나지 않고 사계절의 순환을 따라 전개되는 독립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인물이나 사건의 총체성보다는 공간의 총체성을 확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

청계천변은 부청에서 허가를 받고 빨래터를 개장한 데가 여럿이다. 그중 광교에서 가까운 빨래터에 소액의 이용료를 내고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수다가 끊일 새가 없다.

점룡 어머니, 귀돌 어멈, 칠성이네, 이쁜이 어머니가 빨래 방망이질과 일변 헹군 빨래를 너는 사이 동네 일들을 두고 찧고 까분다.

이발소에서 장차 이발사가 되는 게 꿈인 사환 재봉이는 바깥을 내다보며 기묘하고 흥미로운 세상살이를 두루 살펴볼 수 있어 지겨운 줄을 모른다. 민 주사는 이발소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이모저모 뜯어보며 늙었다고 한탄하지만 그래도 돈이 있지 않느냐며 위로를 삼는다. 그는 경성부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는 마당에 여전히 첩집 도는 일과 마작놀음에 정신이 팔려 있다.

재봉이는 눈을 굴리다가 '평화 까페'를 바라보는데 거기에는 여급으로 나오는 하나코란 조선 처녀가 있다. 그때, 하나코의 어미가 심란한 표정으로 걸음을 되돌리는 게 눈에 접힌다. 뿐인가, 어지간한 구두쇠로 한약국만 지키는 영감의 아들 내외가 다정스럽게 외출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약국 집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창수가 사환으로 있다. 그는 꾀 많은 소년인데 자기 아버지가 사내는 서울로 가야 출세를 한다는 믿음에 따라 이 집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댁 행랑채에는 만돌네가 드난살이를 살고 있다. 만돌 어멈은 행실이 나쁜 아범을 피해 서울로 도망 왔던 것이나 결국 덜미가 잡혀 지금은 몸을 붙이고 살아간다.

재력이 있는 사법서사 민 주사는 염염한 티가 내비치는 첩 안성댁에게 질질 끌려 다닌다. 안성댁이 거짓 아양을 떨며 재물을 취하는 한편으로, 건장한 전문대학생과 불륜을 맺고 있는 낌새를 알아차리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낭패다.

한편, 배다리 골목 안 최장님의 건넌방에 세 들어 사는 이쁜이의 혼례식이 살갑게 거행된다. 신랑은 건달기가 몸에 밴 전매국 직공 강씨인데 꼬락서니는 핸섬하다.

점룡 어멈은 자식이 이쁜이를 좋아하는 걸 아는 터라 마음속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지만 이쁜이 어머니는 남들이 찾아와 치사를 하는 데다 아비 없는 것을 이렇듯 어엿하게 길러 출가시키니 몸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이쁜이같이 참한 색시도 변변찮은 친정 가세 때문에 시댁에서 모진 구박을 받는다. 나중에는 남편한테까지 배신을 당하는데, 이쁜이 어머니의 노심초사하는 정경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마작놀음으로 거금을 날린 민 주사는 우거지상을 짓는다. 돈이라면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지만, 부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상대 후보 운동원들이 이 일을 갖고 비방할 것 같아 걱정이 더한다.

종로에 점포를 가진 포목집 주인은 중산모를 쓰고 의젓한 걸음새로 배다리를 오간다. 자기 매부가 선거에 출마를 했으니 그냥 모른 체할 수가 없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돈 들지 않는 인사라도 부지런히 하는 게 좋을 성싶어서다.

이 청계천변 동네에서 스무 해를 살아온 신선집이 가운이 다했는지 가족 몽땅 야반도주하더니, 이번에는 한약국 집에 행랑살이를 하던 만돌 어멈도 남편의 술추렴으로 말미암아 그 댁에서 쫓겨난 뒤 종적을 감추었다. 못 가진 설움을 함께 나누었던 처지라 동네 아낙네들은 혀를 차며 동정을 보낸다. 드난살이 신세란 내일이 없는 부초 같은 신세나 다름없다.

민 주사는 선거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 자신이 당치도 않은 일에 매달리는가 하며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돈을 풍덩풍덩하게 쓴 탓인지 선거사무소는 잘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낙선이었다. 그는 병석에 누웠지만 안성집의 탈선이 눈에 어른거려 자리보전을 하고 있을 수가 없다. 어떻든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그녀 집으로 걸음을 놓는다.

한약국 집의 심부름꾼 창수는 노랭이 영감 밑에서 죽도록 일해봤자 희망이 없다는 걸 점차 깨닫는다. 이발소에서 기술을 배우는 재봉이는 미래의 기약이나 있을 게고, 아이스케키 장수를 하는 점룡이는 우선의 이익이라도 있을 게 아닌가. 빈지를 마지막까지 떼어본 후 마음이 심드렁해진다.

순박한 시골 처녀인 금순이는 가족과 헤어져 오갈 데 없는 처지인데, 카페 여급인 기미코와 하나코가 측은히 여겨 한 방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그녀는 세 식솔의 부엌일과 재봉틀질, 세탁을 도맡는데, 바깥을 나도는 두 처녀는 식모로보다 친구로 여긴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다가 얼굴이 예쁜 하나코가 반가의 홀아비인 양약국 최가와 결혼하게 되어 식구가 단출해졌다.

이때 금순이는 동생 순동이를 찾았다. 이 소년은 '한양구락부'라는 당구장에서 게임돌이를 하고 있었다. 근면 성실해서 주인의 신임을 받는 성싶었다. 금순이는 기미코의 양해를 얻어 동생을 그들 셋방에 합류시키고는 당구장 보이로 착실히 돈을 모아가게 했다.

민 주사와 안성댁, 전문대학생 간의 삼각관계는 날이 갈수록 구린내를 더한다. 사특한 두 연놈은 짜고서 어떻든 민 주사로부터 한밑천 우려내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녀는 50대의 늙수그레한 사법서사(민 주사)한테 관철동 집을 팔아서는 계동 쪽에다 새 집을 마련해 달라고 떼를 쓴다. 게다가 이제는 홀몸이 아닌데 영감이 죽어버리면 자기네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고 투정을 부린다.

민 주사는 이래저래 입맛이 쓰다.

그 사이에 이쁜이는 남편 강석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비록 아이스케키 상자나 울러 맸던 터수였기는 하나 점룡이는 의기를 가진 사내다. 이쁜이를 못 살게 군 강가를 흠씬 두들겨 패준다.

하나코의 입장도 이쁜이와 진배없었다. 양약국 최가 집안이 좋고 살림이 넉넉하대서 전실 소생 둘을 둔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 재취로 들어가 얌전하게 새댁 살림을 해왔더랬다.

그런데 시댁 사람들은 공연히 과거를 의심하며, 그녀의 여급 행적이 집안에 똥칠이나 한 듯 곱잖게 바라보았다. 그것이 차츰 도가 심해져 구박을 드러내놓고 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남편까지 맞장구를 치는 게 아닌가. 달포를 못 넘겨 그녀는 심신이 내려앉았는데 하속배들의 멸시는 감당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바닥 인생의 젊은이들은 그래도 괜찮다. 용돌이는 웰터급 권투에서 패권을 쥐려 연습에 몰두하고, 낙향했다가 재차 상경한 창수는 '종로구락부'에서 십 원씩 월급을 타며 자족한다. 이발소의 젊은 조수 김서방은 이발사 시험에 합격할 희망에 들떠 있으며, 그 밑의 재봉이도 낙망하지 않는다.

점룡 어머니는 곗돈이 자기 앞으로 낙찰이 되지 않아 애가 타지만 포목집 주인은 여전히 천변을 느직이 걸어간다. 품위의 상징처럼 멋지게 쓴 중산모가 바람에 날려 막 풀린 개천 물에 빠져버린 게 낭패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모여든 구경꾼들과 눈이 마주치자 순간에 얼굴을 붉히고, 다음에 손상된 위신을 회복하려고 엄숙한 표정으로, 연래 애용하여오던 모자를 개천 속에 남겨둔 채, 큰기침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나 자택으로 향하였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핵심정리
갈래 : 장편소설, 세태소설
시점 : 3인칭 관찰자, 전지적 작가 시점 혼용
구성 :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나열한 에피소드식 구성
주제 : 1930년대 서울 중산층 및 하층민의 삶의 애환
특징 ① 다양한 인물의 삶을 50개의 절로 나누어 서술
     ② 카메라로 촬영하듯 실제 사람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려냄


▹구성상의 특징
이 글은 일정한 줄거리가 없이 1930년대 청계천 주변의 다양한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50개의 절로 나열한 작품이다. 일반적인 소설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를 따르는 것과 달리 이 글은 다양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과 관련된 일화를 나열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1930년대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서울의 세태와 풍속을 영화에서 카메라로 찍어 보여주는 듯한 기법(카메라아이)으로 여러 인물들의 일상과 삶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청계천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하면서 물질적·세속적으로 변해가는 당시 사회의 변모 양상을 냉소적으로 전달한다.


▹<천변풍경>에 사용된 영화적 기법 - 카메라아이
영화에서 카메라를 들고 특별한 의도 없이 여기저기를 객관적으로 촬영하는 기법을 말한다. 이 글은 소설이지만 마치 영화에서 카메라아이 기법으로 대상을 객관적으로 담아내듯, 다양한 각각의 장면들을 특별한 연관성 없이 동시다발적·사실적·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대상과 인물에 대한 서술자의 개입을 배제하여 독자로 하여금 1930년대 서울의 세태와 풍경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다.


▹세태소설로서의 <천변풍경>
세태소설 : 당시의 풍속과 생활상을 드러내는 소설
이 글은 1930년대 청계천 주변 서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물질적 욕망이 지배하고 배금주의적 풍토가 만연하며 근대와 전근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당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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