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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대문학

이상, <종생기> 해설 정리

by 솜비 2021. 3. 2.

 

이상(李箱)이 지은 단편소설. 1937년 ≪조광 朝光≫ 5월호에 발표되었다. 이상(李箱)이라는 작가 실명(實名)의 주인공 서술자가 등장하는 고백체 소설이다.
이상의 죽음의 인식 및 죽음의 예감이 서술의 심층을 이룬다. ‘악건강’인 데다 ‘자의식적’ 냉소주의 지식 청년 이상은 어느 날 바람둥이 소녀 정희(貞姬)로부터 R과 S와 모두 헤어졌으니 3월 3일 오후 2시에 만나자는 속달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또 하루라도 빨리 이상의 전용(專用)이 되고 싶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그날 그 시각에 만난 두 사람은 흥천사로 간다. 예쁜 정희는 14세에 이미 매춘을 시작한 여자이고, 이상은 14세 미만에 수채화를 그린 재주꾼이다.
흥천사의 구석방에서 이상은 정희와 정사(情事)를 시도하나 실패한다. 패배감에 빠진 이상은 구토하는 등,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다가 정희는 스커트에서 S에게서 온 편지를 떨어뜨린다.
편지에는 S에게 정희가 하루라도 바삐 정희를 S 혼자만의 것으로 만들어달라고 한 말을 잊지 않으며, 같은 날(3월 3일) 오후 8시에 만나자는 사연이 적혀 있다. 속았다는 배신감 속에 이상은 혼도한다. 다시 깨어났을 때 8시가 지나 있었고 정희는 물론 S를 만나러 가고 없다. 26세의 노옹(老翁) 이상은 종생하나 종생기는 계속된다.
부정(不貞)과 배신을 일삼는 여자를 사랑하는 주인공의 현재의 모습과 어두운 개인사(個人史)가 교차하면서 극히 자학적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일본에서 집필되었다. 두 남녀가 만나는 때로 설정된 3월 3일이라는 신화적 시간의 상징인 부활을 꿈꾸는 정희와 종생으로 가고 있는 이상의 상반된 의식이 작품 전편(全篇)에 걸쳐 대비되어 있다.
‘나’·‘그’·‘이상(李箱)’으로 표현되는 자아분열 현상이나 자의식의 과잉은 자아해체의 한 방도이다. 자살하고 싶다는 충동에서 묘비명까지 작성하지만 자살 그 역시 관념의 유희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주인공의 삶이 마감된 이후에도 계속되는 존재의 지속은 유희이고 동시에 자기해체이다.
그러나 권태로 규정되는 일상적 시간의 세계에 유폐된 자신을 죽음을 통하여 해방시키려는 의도는 경험 세계에서 유희일 수밖에 없는 그러한 행위가 바로 분열된 자아의 존재 확인임을 암시하고 있다.
즉, ‘나’의 시간으로부터의 탈주인 죽음은 외견상으로는 정희의 재생 의지와 상반되는 듯이 보이지만, 그 종생이야말로 진정한 삶으로 가는 출구이다.
자기 구제의 길의 제시에도 불구하고 죽음마저도 유희의 영역으로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당대 젊은 지식인의 암울한 초상이 실측으로보다 더 짙은 음영으로 드러나 보이는 작품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937년 5월 『조광』에 발표한 이상의 단편소설.
김윤식에 의하면 「종생기」는 「날개」, 「동해」와 더불어 남녀관계를 주제로 한 이상 소설의 삼부작 가운데 하나로서, 결혼 파탄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으며, 나아가 표제가 암시하듯이 이상 자신의 생애가 마감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36년 11월 20일에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작가가 1937년 4월 17일 사망한 사정을 감안하면 이 소설은 그가 도쿄로 건너간 지 얼마 안되어 쓴 것이며, 또한 그가 자신의 생애를 조감함과 아울러 죽음을 의식하면서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정희’라는 한 여인이 보낸 편지와 관련되어 떠오르는 이상 자신, 혹은 ‘나’라는 주인공의 심리세계를 진술하는 바, 소설의 끝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나온다. “그동안 정희는 여러번째(내 때꼽재기도 묻은) 이부자리를 찬란한 일광 아래 널어말렸을 것이다. 누누한 이 내 혼수(昏睡) 덕으로 부디 이 내 시체에서는 생전의 슬픈 기억이 창궁 높이 훨훨 날아가나 버렸으면--. 나는 지금 이런 불쌍한 생각도 한다. 그럼--. --만 26세와 30개월을 맞이하는 이상 선생님이여! 허수아비여! 자네는 노옹(老翁)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일세. 이상(以上) 11월 20일 동경서”. 이 소설은 시인 최국보의 시 「소년행」에 대한 패러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 요지는 귀공자가 잠시 산호 채찍을 놓치자 백마가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귀공자가 잠시 화류계에 놀아나는 것이 봄날의 정취라는 점이다. 이상의 경우 ‘산호채찍’은 그의 삶의 목표이며 놀아나는 것은 여러 여인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삶의 양식은 예술에 대한 이상의 생각과도 관련된다.

 


줄거리
'나'는 25년 11개월의 생애를 마감하는 걸 상정하고, 근사한 한마디 '종생기'를 궁리해 본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산호 채찍일랑 꽉 쥐고 죽으리라'-이쯤이면 천하의 눈 높은 선비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하지 않을까.
한 발의 포성에 일약 영웅이 된 희대의 장군 누구는 임종 자리에서 이렇다 할 한마디 유언을 남기지 않고 무사히 죽었단다. 노옹 톨스토이는 만년에 괴나리봇짐을 지고 집을 나선 것까지는 좋았으나 마지막 5분에 유언 나부랭이를 남김으로써 70년 공든 탑을 허물고 말았다.
'나'는 여사한 성인의 생애를 일개 옵서버 자격으로나마 접했으니 그런 따위의 실수는 하지 않아야겠다. 지금, 가을 바람이 자못 소슬한 '내' 구중중한 방에 홀로 누워 종생을 맞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날이 날마다 운명했던 게 아니냐. 이놈의 잠, 내 통절한 생애가 개시하는 참에 청춘이 깡그리 탕진됨을 나는 똑똑히 깨닫는다.
나는 이 얼마 동안 빈곤한 식사를 했다. 나이 같지 않게 노쇠해진 몸이라 12시간 이내에 생애가 끝장날 것 같다. 이미 열세 벌의 유서를 거의 완성해가고 있었다.
'나'는 가을, 소녀는 해동기-이런 둘이 만나 즐거운 소꿉장난하는 걸 그려본다. 더 아름다운 문장이 뭐가 없을까?
그런 참에, 만 19세 2월을 맞은 정희에게서 편지가 속달로 날아들었다.
오, 그 열렬하고, 전폭적이며 헌신적인 사연이란! 그녀는 R와 헤어지고 S와도 절연한 지 다섯 달이나 되었다 한다. '저의 잔털 나스르르한 목 연한 온도가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선생님의 '전용'으로 삼으라는 거다. 3월 3일 오후 두시에 동소문 정류장에 나오지 않으면 징벌을 받으리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나'는 이것이 죄다 거짓부렁임을 잘 안다. 혀를 내어 두를 글이나 깜박 속기로 한다.
이발을 하고 멋스럽게 두루마기를 차려입으니 가히 청초한 백면서생답다. 구겨박질러진 모자나마 15분간 세탁해주는 데를 들러서 멀쩡한 것으로 고쳐 머리에 썼다.
점잖게 30분쯤 지각하여 나갔더니 그녀는 또 그녀답게 30분이나 일찍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 꼬락서니가 '제정 러시아 때의 우표 딱지처럼 적잖이 슬프다. ' 눈물쯤 글썽이는 게 마땅한 줄은 알지만 범연하게 다가섰다. 우리는 한 쌍의 제비처럼 앙증맞게 거리를 산보하기 시작했다.
쇠약한 심장이어서 현기증이 일었다. '나'의 묘비명 글귀를 지어본다. 풍경을 묘사한다면 이태백쯤은 되어야 할거라고 상념 한다. 정희에게 결연히 작별을 고하고 돌아섰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어 하릴없이 어깨를 나란히 해 걷는다.
정희의 가족은 그녀가 열네 살 때 매음을 시켰다. 그녀가 열 아홉 살인 지금은 자진하여 나선 것이다. '나'는 단장을 흔들며 걷다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시 해괴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녀는 곧 에티켓을 배워 짐작할 수 있노라고 속삭인다.
둘은 흥천사 경내를 들어섰다. '내'가 갑자기 경내 풍경이 싫어 엄살을 떨었더니 그녀가, 그 따위 수작에는 식상한 만큼 그만두라고 타박한다.
또 '나'는 종생과 미문을 생각하다가 정희의 이력을 되새겨본다. 그녀의 가족이 매춘을 시켰을 땐 사실 그녀는 닳고닳아 있었다. 재앙을 막아주려니 했던 값진 댕기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둘이서 술집으로 가 한껏 취했다. '나'는 속이 메스꺼워 그녀 스커트에다 토했다.
'내'가 죽겠노라고 난간을 잡고 소란을 피우는 통에 말리러 나온 그녀 옷에서 편지가 하나 툭 떨어졌다. 절연한 지 다섯 달이나 된다던 S에게서 온 속달편지였다. 바로 오늘, 오후 8시에 만나자는 간곡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였다. 눈을 떴을 때는 정희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진 후다.
어느 빌딩 걸상에서나, 별장 방석 위에서나, 아니면 솔숲 잔디에서 외투를 펴놓고 드레스의 끈을 풀고 있을 게다. 그녀가 '나'의 묘비를 찾기라도 한다면 시신은 홍당무처럼 화끈 달리라.
'-만 26세와 3개월을 맞이하는 이상 선생님이여! 허수아비여!'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핵심정리
갈래 : 단편소설, 심리소설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기법 : 심리주의(특별한 줄거리 없이 내면심리를 묘사), 모더니즘
주제 : 현대인의 방황하는 심리와 부정한 여인의 비윤리성으로 인한 자학
          나를 속인 여성(예술)과 젊은 나이에 예술의 열정을 가진 채 죽어가는 나
자신의 삶을 그대로 소설화한 사소설
'나'는 유서를 쓸 때는 물론이고, 외출준비를 하면서까지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


<종생기>는 <날개>, <동해>, <지주회시>와 같은 계열의 신심리주의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화자의 잠재의식이 도처에 불쑥불쑥 표출된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서는 과거를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정희를 사랑하는 주인공 '나'의 모습을 자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어두운 개인사적 면모를 처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에서 특기할 점은, 화자인 '나'가 바로 작가 자신임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술자가 자기 안생과 죽음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자기 인생에 대한 자학과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냉소의 극치를 보여준다. 끊임없이 자신의 부정을 감추는 정희의 부정한 행실이 '나'에게 탄로나게 되자 '나'는 자가당착에 빠져버린 것이다. <종생기>는 이상 스스로가 거부하려 했던 윤리관에 얽매여 충격받고 괴로워하는 또다른 자신의 모습이 주인공 '나'를 통해 철저히 해부되었기에 더한 내면의 어둠과 감동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정희의 부정과 배신은 이 작품에서 이야기 전개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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