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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에라스무스와 인문주의 교육사상

by 솜비 2020. 1. 24.

<교육사 및 교육철학> 에라스무스와 인문주의 교육사상

 

 

 

목차

<에라스무스와 인문주의 교육사상 그리고 르네상스>

1. 르네상스(Renaissance)

1.1. 르네상스의 발단

1.2.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도야(陶冶)

 

2. 인문주의 교육

2.1. 개인적 인문주의

2.1.1 개인적 인문주의의 교육목적

2.1.2 개인적 인문주의에 의해 근대적으로 발전한 교육방법

2.2. 사회적 인문주의

2.3. 키케로주의

 

3. 에라스무스(Erasmus, Desiderius, 1464~1536)

3.1. 에라스무스의 교육사상

3.1.1 후마니타스(humanitas)

3.1.2. 교육의 인간학

3.1.3. 교육의 세 국면 : 자질ㆍ수업ㆍ연습

3.1.4 인격적 관계의 교육학 : 아동의 존엄성

3.2. 에라스무스 교육사상사적 의의

 

 

 

 

<에라스무스와 인문주의 교육사상 그리고 르네상스>

1. 르네상스(Renaissance)

문예부흥, 즉 Renaissance란 말은 이탈리아말의 Renascita에서 나온 말인데 ‘재생’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재생 혹은 부활이란 고대 그리스ㆍ로마의 고전문학ㆍ예술ㆍ사상의 재현을 의미하는데, 그 시대의 특징들 중에서 어디에다가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상이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이 시대에 문예가 부흥하였다고 하여 ‘문예부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리스ㆍ로마 문화가 다시 살아난 것 같다고 하여 ‘고전부흥’이라고도 한다.

 

1.1. 르네상스의 발단

① 중세 말기 유럽의 각 곳에 성립한 신흥 상공업도시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경제적인 번영

② 세속교육운동으로 시야가 넓어짐

③ 마침 동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콘스탄티노플의 학자들이 고전 등 귀중한 문화재를 갖고 이탈리아 남쪽의 살기 좋은 도시 쪽으로 넘어 와 새로운 연구 분위기가 조성됨.

④ 인쇄술의 발명(15세기 초)으로 서적의 대량공급이 이루어짐

⑤ 항해술의 발달로 새로운 항로와 신대륙이 발견됨.

이 르네상스 운동은 인간성을 왜곡하고 현세를 부정하는 중세 기독교적 권위와 편견의 속박에서 해방되자는 운동이며, 자아를 신장시켜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이성을 계발하여 현세를 풍부하게 하자는 지극히 인간적인 운동이라고 하여 humanism 운동 즉, 인문주의 운동이라고도 한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ㆍ로마문화와 학문을 부흥시키자는 의미와 그리스ㆍ로마인들과 같은 인간다운 생활과 인격을 되찾자는 의미의 인문주의 운동이었다.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에서부터 시작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마이카벨리와 몽테뉴, 토머스 모어와 베이컨 그리고 에라스무스 등 실로 사상ㆍ문학ㆍ예술의 경지에서 금세기까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인물들이 이 시기에 활동하였다.

에라스무스가 살았던 르네상스는 14C 초 이탈리아의 여러 항구도시에서 새로운 학술, 문예, 미술 등 예술분야에서 꽃이 핀 것이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이었다. 르네상스를 특징짓는 핵심은 ‘인간’이 예술ㆍ학문 및 생활 전반에 걸쳐 그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 모든 영역에 걸친 종교적인 압박과 구속으로부터 탈피하여 진정한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인간적 요청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문학ㆍ미술 등 예술 분야에서 꽃을 피웠고, 개인적인 성격을 가졌다면,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는 종교적인 성격과 국가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에, 전자를 개인적 인문주의, 후자를 사회적 인문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는 상업자본이 풍부했던 이탈리아 여러 도시의 상류시민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었지 소시민이나 농민생활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16세기에 이르러 알프스산 북쪽의 여러 나라에게 확대되기는 하였으나 스칸디나비아와 이베리아 지역은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따라서 인문주의가 지녔던 참다운 정신은 후일의 종교개혁ㆍ실학주의ㆍ계몽주의라는 대중적 새 사상 속에 간직되면서 자라고 발전되어 갔다.

르네상스운동은 서양 중세의 기독교 절대주의의 모순에서 벗어나 현세의 가치도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으로부터 태동된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은 이미 중세 말기 12~13세기경부터 나타나다가 15세기에 접어들면서 실질적 가치관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극단적인 신중심문화였던 중세사회는 현실보다 내세를 지나치게 중요시했기 때문에 인간성의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무차별 억압하였는가 하면,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 사고보다 교회와 교황의 일방적 권위를 절대시하였다. 이제 그러한 중세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현세중심, 인간중심, 이성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운동이요, 문예부흥 운동이었다.

 

1.2.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도야(陶冶)

휴머니즘이 ‘인간주의’, ‘인문주의’, ‘인본주의’, ‘인간중심주의’ 또는 더 나아가서 ‘인도주의’나 ‘인류주의’ 등으로 다양하게 번영되고 있지만, 이 모든 양상들의 공통점이라면 그 중심에 ‘인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주의는 그 사상의 근본이 되는 인간관을 알지 못하면 이해될 수 없다. 인간은 처음부터 결정적 존재인 다른 동물들과 달리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자신의 판단과 자유 의지에 따라 자신을 규정하고 형성해나가는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관이 바로 인문주의로 하여금 도야운동이 되게 하였다. 중세인들은 규정된 질서 안에서 자신에게 규정된 길을 따라 살아야 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정신, 인문주의의 시야에서는 인간이란 미리 주어진 길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도하며, 자신들의 행위들과 결단에의 자유를 가지며, 고유한 자신의 삶을 형성하여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인간다운 인간으로 스스로 형성해 나가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도야를 통하여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변종ㆍ타락하지 않고 혼돈스러움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도야가 필요하다. 즉, 인문주의에서의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도야되는 것이다.

 

2. 인문주의 교육

르네상스의 참다운 정신은 인문주의적 교육목적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문주의 교육은 초현세적ㆍ초자연적ㆍ금욕적인 중세다운 이상이나 경제적ㆍ물질적 생활만을 추구하는 실리주의에서 반대하였으며, 오직 ‘자유교육’에 그 이상을 두고 ‘개인교양’을 확장할 수 있는 교육내용을 부활시켰다.

즉, 심신의 건강과 단련을 위한 체육, 도덕교육, 문학과 미술의 감상과 표현을 포함하는 미적 정서를 위한 교육 등을 부활시켰는데, 이러한 조화로운 교육이야말로 인문적인 교육의 본질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개인적 교양교육의 최대 내용이었던 고전의 재탐구가 인간적 교양 증진의 목적보다도 차츰 고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려 언어주의에 빠져 들어가는 폐단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좁은 뜻의 인문주의 교육풍토는 대략 16세기 전반기부터 더욱 뚜렷해져 결국 키케로주의(Ciceronianism)교육 사조같은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키케로주의 교육이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문주의가 초기에 지녔던 광범위한 이상이 차츰 쇠퇴하여 좁은 뜻의 형식화된 인문주의로 변질되다 보니, 모든 고전 가운데에서도 키케로의 문장과 그가 쓴 단어가 제일이라고 주장하여 무조건 키케로의 것을 모방하려는 교육사조를 말한다.

이처럼 인문주의 교육은 강조점의 차이에 따라서 개인적 인문주의, 사회적 인문주의 그리고 키케로주의로 구분된다.

 

 

2.1. 개인적 인문주의

개인적 인문주의 교육은 일찍부터 상공업도시의 발달로 부와 생활의 다양성을 가진 이탈리아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 개인적 인문주의는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의 완성과 개성의 존중, 개인의 행복을 더 우선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2.1.1 개인적 인문주의의 교육목적

① 사고, 표현, 창작활동의 배양에 있었다.(중세사회는 기독교 유일의 목적에 의해 개인적 사고나 창작을 경사한 데 비해 가장 큰 차이점임.)

② 지ㆍ덕ㆍ체의 조화로운 발달을 목적으로 하였다. (중세교육에서 경시되었던 합리적 지식이나 육체적 활동 부활.)

③ 개인의 능력ㆍ성격ㆍ필요에 따른 개성의 완성에 있었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이 중세에 극히 제한당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개인적 인문주의 교육에서는 욕망의 추구를 가능한 대로 허용하였다.

교육내용도 중세 학문을 지배하였던 성서와 신학 대신에 인문과학과 예술 등 다양한 내용을 채택하였다. 즉, 그리스ㆍ로마의 고전문학과 고전예술을 중심으로 라틴어, 체육, 음악, 무용, 도덕교육을 내용으로 하였다. 특히 대학에서는 7자유학과 가운데 문법, 수사학, 수학, 예술에 치중하였다. 그리하여 기술자요, 음악가이자 철학자, 물리학자이며 조각가, 화가, 건축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와 같은 다재다능한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2.1.2 개인적 인문주의에 의해 근대적으로 발전한 교육방법

개인적 인문주의에 의하여 교육방법도 근대적으로 발전하였는데 하나씩 꼽아보자면 첫째, 교과서 중심ㆍ강의 중심 교육방법으로 전환되었다. 중세 이래 학교교육이라고는 하지만, 구두문답이나 필기 중심 학습이었던 것이 인쇄술과 종이제조기술의 발달로 책이 대량 공급됨으로써 자연히 교과서에 의한 강의 중심의 교육방법으로 대체되었음을 말한다. 둘째, 개성존중의 교육방법이 강조되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을 존중하기 때문에 자연히 학습자 개인의 요구와 능력수준에 맞게 가르치도록 되었다는 말이다. 셋째, 억압과 처벌을 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장하였다.

이와 같은 교육방법이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인간 자체를 존중하다보니 자연히 중세의 교육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교육방법으로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2.2. 사회적 인문주의

사회적 인문주의교육은 북부 유럽 즉,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 교육사상은 이탈리아지역의 개인적 인문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바 있었지만, 교육의 목적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는 처음 이탈리아에 유학했던 구로테(Groote, Gerhard, 1340~1384)를 중심으로 한 활약이 큰 기폭제가 되었다.

구로테는 네덜란드의 종교가였다. 그가 올바른 신앙에 의하여 일반민중을 구제하고자 하는 이상을 펴려고 했을 때, 기존 성직자들의 반감에 밀려서 고향에 돌아와 직접 청소년의 교육에 정열을 쏟기도 하였다. 그는 비록 일찍 죽었지만 그의 뜻을 이어받은 개인과 단체들이 강력하게 성장하여 건전한 기독교의 포교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청소년과 빈민의 구제를 위한 그의 사업은 계속되었다. 이 운동은 르네상스 운동과 후일의 종교개혁 운동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근대적 사회개혁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였다.

북부 유럽의 이 사회적 인문주의 사상은 한 마디로 도덕과 종교 중심의 인문주의 사상이었다. 따라서 개인적 인문주의가 귀족과 상류층의 생활완성에 치우쳤음에 비하여 사회적 인문주의는 서민과 대중의 인간적 생활완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대중적 인문주의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사회적 인문주의 교육사상은 개인의 완성보다 사회개혁과 인간관계의 개선을 목적으로 한 교육 사상이었기 때문에 미적ㆍ문학적 교육보다는 사회적ㆍ종교적ㆍ도덕적 교육을 강조하였다. 도덕적 행위를 실천하는 것과 아동의 선성(善性)을 육성하는 데 교육의 목적을 두었다. 이와 같이 사회적 인문주의는 도덕과 종교를 중요시하여 당시의 종교적 부패를 통박하였기 때문에 종교개혁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2.3. 키케로주의

인문주의 분파로 키케로주의가 르네상스 말기에 유행하였다. 인문주의가 초기에 지녔던 광범위한 이상이 차츰 쇠퇴하여 좁은 뜻의 편협한 인문주의로 변질되어, 그리스ㆍ로마 특히 키케로의 학문과 동의어로 퇴축시켜 버렸다. 선의 생활화와 웅변가 양성을 목적으로 하였고,

키케로의 문장과 그가 쓴 단어가 제일이라고 주장하여 무조건 키케로의 것을 모방하고자하였다.

 

3. 에라스무스(Erasmus, Desiderius, 1464~1536)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출생하여 파리에서 수학하고 수도원 생활도 거쳤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까지 전유럽을 돌아다니며 연구하고 가르치고 책을 쓰며 살았다.

그는 참다운 인간 생활을 올바른 종교나 도덕적 생활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러기에 에라스무스를 사회적 인문주의자라고 한다. 그는 인문주의적 기독교인으로서 당시 교회의 잘못을 예리하게 비판고, 그 형식적 모순을 파헤침으로써 후일 종교개혁의 기초를 놓았다. 다만 마르틴 루터와 같이 혁명적 수단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좀 소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516년 신약성서의 그리스어 원전과 그 라틴어 역을 동시에 수록한 신약성서를 간행하기도 하였고, 각국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경제적 빈곤으로 곤란을 받기도 하였다. 또, 그의 인기가 높아감에 따라 교회와 왕후 귀족들이 다투어 그에게 갖가지 증여를 함으로써 그의 연구를 풍족하게 하여 준 때도 있었다. 유럽 각국의 궁정에서는 제각기 에라스무스를 빈객으로 초청하고, 각 대학에서는 그를 교수로 초빙했다. 그러나 일부에서 그를 경솔하다고 비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의 얄팍한 입술에는 항상 시니컬한 미소가 떠돌고 행동은 냉정했다. 조금의 동요도 없이 오히려 그를 속박할 위험이 있는 모든 지위와 호조건을 단호히 거절했다.

「크리스챤 군주교육론」이라는 책을 쓰고, 「평화의 단식」을 써서 최초의 세계평화 교육론자로 칭송을 받을 만큼 전쟁을 비판하고 평화를 역설하였다. 그의 「군주교육론」은 군주교육의 원리를 고전적 교양과 그리스도교에서 찾아내고 있다. 고대철인들의 지혜와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일치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으며, 이 저서에서 플라톤풍의 철인정치를 이상적인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남녀동등 교육사상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즉, 한 가정이나 사회의 도덕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면 남성만의 교육으로는 충족하지 않다고 보았다. 따라서 여자도 남자처럼 지식이 개방되어야만 도덕적인 사회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에라스무스는 고대 그리스ㆍ로마 교육사상 이래 남녀동등 교육정신을 싹트게 한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교육사상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교육내용은 고전, 성서, 역사, 지리, 과학이었고, 라틴어도 중요시되었다. 에라스무스가 근대 교육사에 남긴 빛나는 발자취는 그의 교육방법이다.

 

○ 에라스무스의 저서「아동의 자유교육(1529)」

① 처벌은 학습에 대한 동기로서 필요치 않고, ‘자유인에게는 자유스러운 교육’을 해야 한다. 웃으면서 가르치고 놀면서 배우는 자유교육이 참된 교육이다.

② 아동의 흥미 능력에 따른 개별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③ 교육은 서둘지 말고 점진적으로 자연에 따라 행하여야 한다.

④ 조기 교육은 중요한 것이며, 교사가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중요하다.

 

3.1. 에라스무스의 교육사상

3.1.1 후마니타스(humanitas)

후마니타스는 흔히 ‘인간성’이라고 번역되고 있어서, 그냥 단순히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본성적 자연을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인간성’이란 인간의 존엄성에 어울릴 가치가 있는 거동, 혹은 태도를 뜻하는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성취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에라스무스는 ‘인간들은 인간성을 통하여 개선되어야 하고, 이를 저버려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의 삶의 목적이란 이 ‘후마니타스’에 이르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인간의 개선 자체를 인간에게 부과된 과제이며 동시에 인문주의의 과제로 이해하였다.

에라스무스는 종교적 측면이 인간의 완성에 있어서 더욱 높은 단계에 있으며, 그가 기독교적 인문주의자라고 불리워지는 것도 이에 기인하는 것이다.

에라스무스 사상 전체는 서양의 사유 전통에 있어서 두 기둥을 이루고 있는, 진리의 종교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종합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차원은 에라스무스가 말하는 후마니타스라는 개념 안에서 만나고 있는데, 에라스무스를 이를 다시 ‘도야’와 ‘경건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도야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먼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악에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육 및 도야를 통하여 악에의 성향을 제어해야 한다고 했다. 도야는 특히 좋은 문학작품, 학문들 안에서, 즉 고대문화 및 철학 안에서 찾아지는데, 여기에서 고대 언어 공부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그러나 ‘인간성’에 도달하는 데에는 도야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도야된 자라고 하여 인간답게 행동하리라는 확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경건성’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인간 상호간의 호의의 결실을 맺으려는 사람은 인간 안에 있는 내면성 및 개인의 책임을 각성시켜야 한다. 복음서는 이 각성을 점화시켜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더 적게 알고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은, 더 많이 알고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고 한 말에서 그가 얼마나 실천적인 면, 윤리적인 면에 가치를 두었는가 하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에라스무스에 있어서 후마니타스는 종교적 및 정신적이라는 두가지 차원의 변증법적 종합이다.

 

3.1.2. 교육의 인간학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본질과 특성을 동물에 비유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배움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 무방비 상태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 결핍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정신, 이성을 주었다고 하였다. 이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본 이후 중세를 거친 고전적인 인간 이해에 에라스무스도 기대고 있는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교육의 필요성은 이중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일차적으로는 살아남기 위하여, 그리고 이를 넘어서서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가짐으로 인하여 동물보다 우월한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교육은 필요한 것이다. 또, 인간의 삶은 하나의 커다란 배움의 과정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살지 않는 인간은 사실상 인간이라기보다 동물에 가깝다. 세심하게 제 때에 수업을 받고, 도야되지 않은 인간은 쓸모없는 피조물이 되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들을 교육시킬 의무가 있다고 하였다. 교육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 조형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인간의 정신은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밀랍이나 점토에 비유될 수 있는데, 올바른 형식을 가지기 위하여 예술가를 필요로 하듯이, 정신도 조형자를 필요로 한다. 이 형식을 조형하는 것이 바로 일차적으로는 부모의 과제이자 또한 교사의 과제인 것이다.

도야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과제라면, 도야와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교육은 부모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사회 전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3.1.3. 교육의 세 국면 : 자질ㆍ수업ㆍ연습

에라스무스는 교육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할 점들에 대하여서도 언급한다. 도야로의 길, 즉, 교육에 있어서 자연적 자질, 수업 및 연습이라는 세 가지 교육학적 국면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다. 자연적 자질이란 이성적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능력 및 이들을 습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며, 각 개인의 자연적인 소질, 재능과 성향까지를 포함하여 일컫는다. 먼저 교육자가 이 성향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는 교육은 성공할 수도 없고, 학생이 자신에게 적합한 활동으로 인도될 수도 없다. 또, 천성적인 소질은 이론적인 지도를 필요로 하는데, 이것이 바로 수업이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교육자는 이를 고려하여 학생 개개인에게 고유한 자질을 발견하여 촉진시키고 격려해야 하며, 모두에게 동일한 것을 요구하지 말고 개별적 수업을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교육을 위하여 충분하지가 않다. 배우는 이가 열심히 연마하지 않는다면 견고하지 못하여 지속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연습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를 에라스무스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수업은 자연에 방향을 주고, 연습은 수업을 실행으로 이끈다. 또한 자연은 수업을 요구한다. 수업을 통하여 이끌어지지 않는 연습은 길을 잃을 위험에 처한다.’ 이 세가지의 연관성을 인식하고 잘 결합시킬 때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1.4 인격적 관계의 교육학 : 아동의 존엄성

에라스무스는 수업에 임하는 교사가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또 어린이들이 그를 사랑할 수 있도록 처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함으로써, 사랑이 교육의 본질임을 강조하였다.

학문을 좋아하지 않는 아동에게도 교사에 대한 호감이나 사랑이 있을 때, 공부가 즐거워질 수 있다. 에라스무스는 더 나아가서, 왜곡된 권위에 입각하여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교육에 반대하고, 두려움이나 공포보다 올바른 인간관계에 기초한 교육을 지향할 것을 말하였다. 또, 체벌에 대하여 단호히 반대하였다. 만약에 매를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공명정대한 경고이어야 하며, 꾸지람도 온화함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 혹독하여서는 안된다.’ 고 경고한다. 에라스무스가 체벌에 대한 단호한 반대자였다는 것은 분명 그러한 시대적 상황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에서 출발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훼손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용납하지 않는 인문주의의 기본정신에서 볼 때, 교육에 있어서 아동의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3.2. 에라스무스 교육사상사적 의의

아동의 조기교육의 강조 - 제때에 일정한 내용의 것을 습득하지 못하고 시기를 놓치게 되면, 후에 배우게 될 때, 더욱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된다. 교육자는 피교육자의 성향과 개성을 고려하고 학습지도 방법을 개발하여야 한다. 수업은 놀이처럼 행해져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오늘날 범람하는 아동교육 지침서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으로 강조되고 있는 ‘새로운’ 것들이다.

작자가 누구인지 모른 채 에라스무스가 쓴 교육에 관한 글을 읽는 다면, 이것이 오백년쯤 전에 쓰여진 글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 낡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새로워보이기까지 한다.

 

에라스무스 이외에도 르네상스시대 인문주의 교육사상가에는 비토리노, 베지오, 아그리고라, 쉬투름, 아스감, 비베스, 라블레 등이 있다.

 

 

 

 

 

 

 

 

 

 

 

참고문헌

아동교육사, 홍순정, 곽노의, 정미라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교육의 역사 철학적 기초, 남궁용권, 학문사, 1995

위대한 교육사상가들Ⅰ, 연세대학교 교육철학연구회. 교육과학사, 1996

교육의 역사 및 철학적 기초. 조영일, 형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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