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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선조26) 권필(權鞸)이 지은 한문소설.
줄거리
(간단 줄거리 : 촉주에 사는 주생은 계속하여 과거에 실패하자 벼슬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재물을 팔아 강호를 유람하다가 기생 배도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는다. 주생은 배도의 소개로 승상의 아들 국영을 가르치러 승상의 집에 드나들다가 그집 딸인 선화와 사랑에 빠지고, 이를 배도가 알게 되자 두 사람은 헤어진다. 배도가 세상을 떠난 후 선화와 정혼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에 원병으로 출저나게 되어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 이 작품은 주생, 배도, 선화의 삼각관계를 통해 기생보다는 양반집 여인을 택하는 남자의 이기심과 배신, 배신당한 여인의 심리적 갈등과 죽음 등을 다루고 있다. 또 주요 등장인물들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함으로써 자연과 운명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주생은 촉나라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고 총기가 있어 남들로부터 천재라는 말을 들었으며 특히 시를 잘 썼다. 나이 열 여덟에 태학생이 되어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샀고, 그 자신도 자기의 재주와 학문이 보통이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태학에 수년 동안 재학했지만 끝내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인생관을 바꾸게 되었다. "사람의 세상살이가 마치 티끌과 같은 것인데 어찌 사람들은 공명에 급급해서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인가.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입신양명만을 생각하고 있는 내 청춘이 아까울 뿐이다."
그 후 주생은 과거 공부를 단념하고 강호유람을 다니기로 한다. 그 동안 궤짝 속에 숨겨두었던 돈 몇백 냥으로 배 한 척을 샀다. 그리고 장사가 될 만한 물건도 샀다. 그것으로 생활하며 누구에게도 구속을 받지 않는 자유를 누려보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아침에는 오나라, 저녁에는 초나라로 옮겨다니며 하늘의 구름과 같은 생활을 했다.
어느 날인가 익양성 밖에 배를 매어놓고 친구를 찾아가 밤새도록 술을 마시게 되었다. 새벽녘에 술에서 깨어보니 그의 배는 물 한가운데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그곳은 그가 어릴 적 살았던 전당이라는 곳이었다. 주생은 육지에 올라 옛 친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배도라는 기생을 만났다. 배도는 그와 어릴 때 같이 자란 소꿉친구였다. 이제는 재색을 겸비한 실로 아름다운 기생이 되어 있었다. 배도는 옛 친구를 만나자 감격해서 그를 자기 집으로 끌고 갔다. 두 남녀는 어릴 적 우정을 다시 느꼈지만 성인이 된 후의 만남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장가를 드셨나이까?"배도가 물었다. 주생이 아직 이라고 말하자 배도는,"군자는 이제부터 저의 집에 머무소서. 그러면 첩은 군자를 위해서 좋은 요조숙녀를 구해드리리다"라고 말했다. 그리고서 주생을 방으로 안내했다. 주생은 자리에 누워서도 배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 생각은 점점 흉악한 망상으로 변해갔다. 이윽고 주생은 옆방에서 글을 쓰고 있던 배도를 찾았다. 배도 역시 주생만큼이나 생각이 간절했으나 애써 피하면서 주안상을 내어왔다.
배도는 자신의 선조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했었지만 조부가 죄를 지어 천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 조실부모하고 결국은 기생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이제 주생을 만나게 되어 앞날을 의지하려고 하니 부디 입신양명하시어 자신을 기생의 적에서 빼내어달라는 청을 했다.
주생은 눈물을 흘리는 배도를 위로하였고, 배도에게 언약문을 써주었다. 배도는 언약문과 자신의 정절을 바꾸었다. 주생은 한창 피어난 배도의 육체를 마음껏 정복했다. 그러나 그는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그 다음날 배도는 가까이 사는 노승상 댁에 불려가게 되었다. 승상이 죽고 자식들과 함께 지내는 승상 부인이 가무를 즐겨 재주가 많은 배도를 부른 것이었다. 주생은 배도를 보내기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배도를 보내놓고 나니 이상한 질투의 감정이 생겼다. 혹시 살아 있는 승상을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갑자기 견딜 수가 없어서 한달음에 승상 댁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주생은 승상 부인과 배도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걱정이 쓸데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운명적으로 승상 부인의 딸을 보게 되었다.
마침내 배도는 집으로 돌아왔고 주생은 배도를 통해 승상 부인의 딸이 열 다섯 살 난 선화라는 것과 그녀의 시 짓는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생은 배도를 품고 있으면서도 어느덧 선화에 대한 묘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배도를 통해 주생의 글솜씨에 대해 알게 된 승상 부인은 열두 살 난 아들의 공부를 주생에게 맡기기로 했다. 주생은 선화를 만나게 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승상 댁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배도는 그런 남편을 의심했지만 주생이 뛰어난 말솜씨로 설득하자 그를 믿기로 했다.
승상 댁 아들인 영국의 공부는 대충대충 처리하면서 주생은 선화를 정복할 수 있게 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선화의 방을 찾아가려면 난관을 여러 번 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이 오히려 주생의 욕망을 자극했다. 그에게는 이미 배도의 완성된 육체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윽고 어느 날 밤, 주생은 선화의 방에 찾아들었다. 거문고를 뜯던 선화는 주생이 들어온 것을 알고 가만히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 주생은 살며시 선화의 옆에 누웠고 드디어 그녀를 정복했다. 이날 밤의 정사는 배도와의 그것과는 다른 정취를 주었다. 그날 이후 주생은 밤마다 담장을 넘어 선화를 찾았다. 담을 넘는다는 모험이 그들의 정사를 한없이 통쾌하게 해주었다. 열 다섯 살의 소녀는 제법 어른다워서 오히려 그를 가르쳐주고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렇게 지내기를 여러 날, 어느 날 선화는 주생에게 거울을 쪼개어 나누어주고, 또 비단 부채를 주면서 사랑의 맹세를 하게 하였다. 남몰래 하는 사랑에 어느덧 겁이 나버린 것이었다. 주생은 선화에게 정식으로 매파를 넣어 예를 지킬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한편으로 주생은 배도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배도와 선화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갑자기 배도를 만나고 싶어졌다. 주생은 핑계를 대고 배도의 집으로 가서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 선화는 그리운 마음으로 주생을 기다리다가 그의 행장 보따리를 끄르고 소지품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배도의 시가 몇 편 발견되었다. 선화는 질투와 증오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먹으로 그 시들을 박박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옆에다 자신의 시를 써두었다. 그것은 주생을 그리워하는 시였다. 그러나 선화는 주생이 돌아온 후에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정사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승상 부인이 주생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술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배도도 함께 했다. 주생은 많이 취했고 배도는 그런 남편을 방으로 옮겼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주생의 행장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아니나다를까 자신이 의심했던 대로였다. 박박 지워진 자신의 시 옆에 선화가 쓴 다른 시가 있었던 것이다. 배도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다음날 아침 술에서 깬 주생은 그간의 일을 배도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할 수 없이 배도를 따라 승상 댁을 나온 주생은 배도의 집에 가서 그 전과는 다른 차가운 대접을 받으며 지내게 되었다. 한편 주생이 떠난 후로 영국은 병이 들어 죽어버렸고, 선화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생병이 들어버렸다.
그러던 중 결국 배도 마저 병이 나서 죽게 되었다. 배신당한 아픔이 너무도 커서 그만 병이 나고 만 것이었다. 배도는 죽으면서 주생이 선화와 혼례를 올릴 것과 자신을 낭군이 왕래하는 길가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배도가 죽자 주생 역시 살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인생 자체가 허무했다. 살아갈 맛이 없고 아무런 목적이 없는 듯했다. 그는 한없이 외로운 마음으로 배도의 집을 나와 다시 배에 올랐다. 배를 타고 가면서 그는 승상 댁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 순간 주생은 비로소 자기가 선화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주생의 배는 며칠 뒤에 호주의 물가에 대어졌다. 그곳에서 그는 친족이자 이름난 대갓집인 장씨 댁을 찾아 며칠 묵게 되었다. 장씨는 주생을 친절히 맞아주었고 선화와의 일을 듣고 나서는 승상 댁과 혼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마침 딸의 비밀을 눈치챈 승상 부인이 주생을 찾고 있던 터라 결혼 날짜도 빨리 잡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선화와 주생은 장문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그러나 때마침 조선에 왜적이 쳐들어와 명나라가 원군을 파병하게 되자 주생도 서기의 소임으로 원병에 끼이게 되었다. 그는 하루하루 선화를 그리워하는 시를 지었고 그러다가 그만 병이 나고 말았다. 그는 타국 땅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나는 그를 개성의 한 역관에서 만나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의의>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와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을 잇는 소설.
최초로 가탁법을 소설에 적용함(주인공의 사연을 다른 사람이 대신 전한 가탁 형식의 소설)
(가탁법 :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빌려 감정이나 사상을 표현하는 방법)
<특징>
1. 작품의 현실성 : 고전소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는 비현실적, 전기적 요소가 비교적 약하다.
인물, 사건, 배경 등이 사실적으로 제시되었으며,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한 남성의 탐욕과 이기적인 언행, 여성의 본능적인 애욕과 질투심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띠고 있다.
고전소설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비현실적 성격에서 벗어나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 초기 소설과 후기 소설의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다.
2. 규범적 구속으로부터의 일탈 : 주생은 선비의 신분을 떨치고 장사꾼으로 나서는데, 주생의 이와 같은 장사 행위는 이윤 획득이라는 목적보다는 '과거시험'이라는 규범 세계로부터 일탈하여 새로운 가치를 탐색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의식을 엿볼 수 있다.
3. 인간 욕망의 긍정 : 주생은 사랑의 대상을 쟁취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인물.
선화의 방에 들어가면서, "일이 성공하면 귀한 몸이 될것이요, 실패로 돌아가면 죽임을 당해도 좋다"고 할만큼,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는 태도가 나타나 있다. 주생, 배도, 선화의 공통점은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는 인물이라는 점.
4. 신분상승적 욕구와 민중의 소망 : 배도는 주생과의 애정을 통해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민중의 소박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5. 서정시 삽입 :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슬픔과 우수의 심정을 여러 편의 시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삽입된 서정시는 인물의 정서를 대변하는 구실을 한다.
6. 비극적 결말 구조 : 주생, 선화는 어렵게 가약을 맺어 혼인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주생이 조선에 파병됨으로써,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고 마는 비극적인 결말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고전소설의 일반적인 행복한 결말과는 다른 부분이다.
7. 액자소설적 구조 : 작품의 끝에 서술자(나)가 봄에 송도에 갔다가 역관에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주생을 만나 그의 행적을 듣고 돌아와 서술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야기의 현실성을 높여주는 방법이다.
주생, 배도, 선화의 삼각 애정관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과 신분상승 욕구 등을 현실감있게 그리고 있는 전기형식의 작품.
(권필은 중국의 전기소설을 단순 모방한 것이 아니라 당대 전기소설이 갖고 있는 문학적인 관습을 창작기법으로 활용하며
권필만의 창작기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전기소설의 특징인 문사형 인물이 등장한다거나 삽입시나 제문 편지 등의 양식이 서사를 이끌어 가며 남녀간의 애정이 간결하게 나타나는데 이런 요소들을 작가가 수용하였다.전기소설의 성향이 강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세계관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비극적인 결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과감하게 과거시험을 청산하고, 당시에는 천한 직업으로 여긴 장사를 시작한 것에서 17세기 조선후기 사회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몰락한 양반층으로서 현실세계의 모순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을 박차고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나타나 있다.
<주생전>은 신분이 다른 두 남녀를 결합 가능한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이념 및 계층적 갈등을 낭만적으로 윤색하면서도, 왜구의 침입에 의한 전쟁으로 인해 그 결합이 깨어지는 비극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전쟁 모티프는 중세적 현실의 규범적․신분적 장벽에다 이민족의 침입과 외세의 개입으로 인한 민족 모순의 장벽을 확대 강화하여 드러내는 것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작품은 남녀간의 사랑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남성의 애욕과 이기주의, 여성의 질투와 자기 희생적 인고 그리고 애정성취를 위한 주변인물의 이해와 협조 등의 세부정황을 비교적 실감있게 그리고 있는 애정소설이면서도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중세 체제의 모순과, 소외양반층 및 하층민의 억압된 의지를 비판적 지식인의 시각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서의 심층적 의미 또한 아울러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이 작품은 한 청년선비의 비극적인 운명을 전기형식(傳記形式)으로 쓴 것이다. 조선조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비현실적인 요소는 없으며 배경이나 사건의 전개나 인물들이 모두 현실감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하여서는 몇 가지의 서로 다른 해석이 내려져 있다. 삼각연애를 중심으로 남성의 탐욕과 이기적인 사유, 여성의 선천적인 애욕과 질투심 등을 그린 것 이라는 관점, 작가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짧은 인생을 불우하게 살다간 자신의 운명을 주인공의 낭만적이고 불우한 생애로 재생시킨 것이라는 관점,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경이와 삶의 비극적 과정을 그린 것 이라고 보는 관점이 그것인데 뒤의 둘은 비슷한 관점이다.
한편 이 작품은 분위기도 특이하며 모든 인물이 불우한 상태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거대한 자연과 운명 앞에서 인간이 그 왜소함을 드러낼 뿐 아니라 슬픔을 표현하는 서정시가 수없이 삽입되어 있어 작품 전체가 우수로 가득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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