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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각

프로포즈 아닌 프로포즈

by 솜비 2019. 10. 30.

프로포즈(프러포즈) 외국어라 사전 등재도 안되어있네^^;

하긴.. '청혼'이라는 우리말이 있긴 하니까...

아무튼, 정식 프로포즈는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들었던 '결혼하자'는 얘기여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로맨틱하다고 느꼈기에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문득 오늘은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끄적여본다.

 

우리는 꽤 오래 연애를 했던 커플이었다.

여느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갈 무렵이면 헤어지기 싫어서

서로에게 집에 가지 말라며 칭얼거리곤 했었다.

 

여름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질무렵의 한적한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차가운 벤치에 앉으려는 나를 붙잡고 그는 웬일로 손수건을 깔아주었다.

별 것 아닌, 그리고 평소같지 않은 배려에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공원 벤치에 앉았다.

어둠이 내려앉고, 가로등이 켜졌고, 근처에 분수대가 노래를 부르던 그 밤.

우리는 평소처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헤어지기 싫다고, 집에 보내기 싫다고 또 어김없이 투정을 부렸다.

그러던 그는 '우리, 2년 후 봄에 결혼하자'고 말했다.

나는 처음 듣는 남자친구의 말에 조금은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고,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능력있는 여자도 아니었으니까.

평소의 그의 성격으로 볼 때, 그저 분위기에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많은 생각과 계산을 한 끝에 나온 말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는 나의 손을 그가 꼬옥 잡아주었다.

그리고 말없이 안아서 토닥토닥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내가 말하지않아도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고맙고, 미안했다.

가진 것도 없는 보잘것 없는 나에게 결혼하자고 말해주는 남자친구가 참 따스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밤의 공기, 주변의 소리, 풀냄새까지 바로 며칠 전 일처럼 생생하다.

정식 프로포즈는 아니었지만, 나에겐 프로포즈와 같았다.

 

그리고 남자친구의 계획대로 2년 후에 결혼은 못했지만, 또 1년이 흐르고 나서야 정말로 결혼을 했다.

지금도 정식 프로포즈만큼 기억에 남아있는 그 밤 공원에서의 '결혼하자'는 말.

나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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